◇무너지는 교육현장_공허한 「百年大計」
『힘들게 학생지도를 해봤자 무슨 결과가 나오겠느냐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인천 S고교 K교사의 한탄이다. 교단에 선지 10년됐다는 그는 갈수록 「百年大計」라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교복을 입은 채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데도, 꾸중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스스로 딱합니다. 교사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졌어요.』
체벌을 가했다고 112신고를 하는 바람에 교사와 학생이 경찰조사를 받고 「합의」를 하거나, 꾸중을 둘러싸고 몸싸움까지 벌이는 현실은 무너져 내리는 교육현장을 보여주는 단면에 불과하다. 스승과 제자란 애틋한 관계는 이미 실종된 지 오래다. 교사들은 지도에 한계를 느낀다며 머리를 내젖고, 학생들은 규율이 버겁다며 칠판에서 눈길을 돌린다. 우리 교육현장은 이대로 표류할 것인 가?
▲튀는 학생, 무기력한 교사
인천고교 趙王奎교사(37·학생부장)는 10대들의 출입이 잦은 석바위나 주안역 앞으로 교외지도를 나갈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업소마다 삐끼(호객꾼)들이 진을 치고 출입을 막습니다. 오락실같은 곳은 봉변을 당할까 싶어 여럿이 동행을 해요. 어떤 곳은 업소주인들이 위압감을 주면서 「당신들이 뭔데 단속을 하느냐?」고 대들기 까지 합니다. 이러다 보니 여선생님들은 아예 지도에 나설 엄두도 못내죠.』
이런 상황에다 어른처럼 차려 입은 옷과 화장 때문에 학생인지 구별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신분증도 갖고 있지 않아 단속의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동안 화장실이나 운동장 한 켠서 은밀히 이뤄졌던 흡연. 이젠 교실에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인천 I고 1학년 Y군은 『42명의 급우중 30% 가량이 담배를 피운다』며 『고학년으로 갈수록 심한 데다, 3학년은 입시스트레스를 이유로 더 피우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교육계 경력 35년의 K교장은 『교복자율화 이후 대부분 학교에선 교사가 학생들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며 『더 심각한 위기상황이 오기 전에 교육현장은 물론 가정, 사회가 함께 책임의식을 갖고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사들은 흡연, 음주, 복장, 유흥업소출입 등 학생 금지사항에 대한 지도가 요즘처럼 힘든 적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인천 W고교의 한 교사는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웠더니 귀찮게 한다며 오히려 시비를 걸어 황당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비행학생들은 상담여교사에게 모욕적인 언사까지 서슴치 않는다』며 우울해 했다.
지난 6일 인천 S여상에선 N양(16)이 K교사(33)에게 체벌을 당했다며 대들고, 반말까지 하다 끝내 몸싸움을 벌인 사건이 발생했다. 수업시간중에 규정을 어기고 사용한 무선전화기를 압수하자 빚어진 일이다. 우리 교육현장은 이처럼 황폐해 졌다.
▲교육부재시대, 원인과 대책은 무엇인 가?
「학교붕괴현상」의 배경을 한 분야로 특정짓기는 곤란하다. 그만큼 다양한 부작용이 얽혀 있다는 게 교육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교복자율화, 멀티미디어세대 특유의 폐쇄성과 이기주의적 특성, 향락·퇴폐문화의 만연, 교원처우의 미비, 겉도는 입시정책, 가정교육의 부재 및 학부모들의 일방적 과보호 등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가치관형성에 혼돈을 겪고 있으며, 교사에 대한 존경과 신뢰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교육적인 목적에서 필요한 체벌조차 「제재」가 심해지면서 교사들 사이에선 『사랑도 좋다. 그러나 매라도 들어 경각심을 일으켜야 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여기에다 교원정년 단축, 교육재정의 감축 등 일련의 구조조정은 가뜩이나 침체된 교사들의 사기를 더 떨어뜨리고 있다. 아울러 그릇된 감각주의와 소비문화를 부추기는 TV 등 미디어 매체의 폐해도 지적대상의 하나로 꼽힌다.
운산기계공고 朴土柱교장(61)은 『한창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인내력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하는데, 현실은 온통 이들을 유혹하는 것 뿐』이라며 『유혹속에 방치된 아이들, 그리고 사기가 꺾인 교사들의 체념속에 교실이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걱정했다.
일선에선 교실과 학교공동체 붕괴라는 일종의 공동화(空洞化)현상을 막으려면 우선 교원의 사기진작과 재정확충, 교원수급문제의 해결을 통해 교육현장을 추스리고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위축된 교원들에게 학급담당수당 및 보직교사 수당인상, 교원연금 기득권 보장 등을 뒷받침해야만 책임있는 지도와 애정어린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인하사대부고 崔根植교사(42·국어과)는 『소위 「탤런트문화」에 길들여진 수동적인 학생들을 능동적, 창의
무너지는교육현장-공허한 백년대계
입력 1999-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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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1-2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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