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 말짼?” 안색이 창백한 아들에게 평안도출신 아버지가 엉겁결에 묻는다. 아들은 말뜻을 몰라 어리둥절하다.
아버지가 얼른 말을 고친다. “너 어디 아프니?” 그제서야 아들은 `말째다'가 `아프다'의 사투리라고 짐작한다.
실향민 가정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 경우 아버지의 말투에서 이질감을 느낄 아들이 있을까.
경상도출신 어머니가 “저 정지 옆에 수금포 좀 가온나”(부엌 옆에서 삽을 가져오너라)라고 했을 때처럼 사투리의 맛 혹은 재미를 더 느끼지 않을까.
웬만한 남한 국어사전엔 `말째다'가 없다. 큰 사전을 찾아봐야 `복잡하고 불편하다'는 뜻의 방언이라고 돼 있다.
그러나 평양에서 출판된 조선말대사전에 보면 `말째다'는 버젓한 문화어(표준말)로 올라 있다.
`거북하고 불편하다, 사람이나 일이 다루기에 까다롭다'라는 뜻풀이와 함께 다양한 용례도 제시된다. 그래도 `말째다'는 남북 국어사전에서 찾기 쉬운 말에 속한다.
`통일'이라는 올림말(표제어)을 찾는다고 해 보자. 남한 사전에는 통신과 통장 사이에 통일이 있다.
하지만 북한 사전에서는 통신 통장 통화를 한참 지나서야 통일이 나온다. 조선어에서는 음절 첫머리에 오는 `ㅇ'은 아예 소리값(음가)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일'은 `화'보다 훨씬 뒤에 실린다. 조선어 대사전에는 `ㅇ' 항목이 아예 없고 `ㅅ'에서 `ㅈ'으로 건너뛴다.
`아가'라는 말은 `ㅎ'이 끝나고 `ㄲ'(된기윽, 남쪽에서는 쌍기역) `ㄸ'(된디·쌍디귿) 등 된소리도 지나서, 남한사전에는 없는 `ㅏ'항목에 실려 있다.
국어학자들이 자모의 순서와 컴퓨터 자판부터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남·북간 언어이질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지금까지 교류 결과 일상적 의사소통엔 전혀 지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평화통일' `연방제' 같은 민감한 말의 의미가 크게 다르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다.
언어에서도 이질감 보다 동질성을 더 강조할 때 통일이 앞당겨지는 게 아닐까.
楊 勳 道 <문화체육부장>문화체육부장>
이질감 동질감
입력 2000-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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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2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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