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국민들이 '금모으기 운동'을 벌이고 당장이라도 나라가 어찌될 것인양 어린 고사리손들까지도 걱정스러워 했다.
노숙자들이 길거리를 방황하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았고 그들은 지금까지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100만명이 넘는 가장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수많은 금융기관과 기업이 문을 닫았다.
모은행의 퇴출행원들을 묘사한 '눈물의 드라마'를 기록한 비디오테이프는 당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면서 자신들의 일인 것처럼 국민 모두가 이를 보면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러면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극심해졌다.
IMF 외환위기 당시 금리가 20% 이상까지 치솟자 은행에 돈을 쌓아두었거나 달러를 많이 보유한 이른바 '가진 자'들은 술자리에서 '이대로'를 외치며 건배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혹독한 구조조정, 40대 중장년층의 실업, 국민들의 허리띠 졸라매기 등으로 얼마 전에는 550억 달러의 IMF 구제금융 가운데 나머지 135억 달러도 갚아 'IMF를 졸업했다'며 샴페인을 터뜨렸다.
극심한 경제난을 계속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의 신문에는 '환란을 슬기롭게 극복한 한국을 배우자'는 기사가 많이 실렸다고 한다.
불과 2년도 채 안된 일이다.
지난해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세계 경제공황이 닥치지 않을까 두려워 우리나라도 긴장을 늦추지 않던 것이 엊그제의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주변은 어떤가.
경기가 회복됐다고 야단을 떨면서 일부 계층의 과소비가 가관이다.
초고가 외제 선호현상이 극에 달하면서 서민들의 아파트 한 채 값이 훨씬 넘는 1억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외제 승용차는 없어서 못팔 정도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가 힘든 서민들로서는 IMF의 기억이 새롭기만 하며 무슨 일이 '덤터기'처럼 닥칠지 불안할 뿐이다.
경제전문가들조차 한국경제가 겨우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벗어났지만 본격적인 회복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올들어 판매된 수입자동차는 1월 849대, 2월 776대 등 모두 1천625대이며 이달에는 주문이 1천대를 훨씬 넘어 몇달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수입차가 호황을 맞고 있다.
고가 화장품이나 의류 골프용품 양주 등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도 지난 1~2월중 30억 달러에 이르러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6%나 폭증했다고 한다.
웬만한 경차 가격과 맞먹는 300만원짜리 수입 유모차도 없어서 못 팔았다고 한다.
게다가 삼베에 황금을 입힌 4천만원짜리 수의도 등장했다.
수출실적은 12개월째 감소세를 면치 못하는데 말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같은 경기회복의 거품현상들이 서민들에게 집중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주식, 부동산, 과소비는 사실상 오직 '부자'들의 놀이판일 뿐이기 때문이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요즘 유행하는 것도 그저 말로만 들어 뿌듯할뿐 부자의 대상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닌지.
천장을 모르고 뛰어오르는 집값, 전월세 폭등, 각종 물가인상, 사교육비 상승 등은 고스란히 서민들의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어렵게 일어서는 경제가 또 무너진다면 일자리에서 쫓겨나 거리를 방황해야 하는 것은 또 서민인 것이다.
소득의 범위내에서 합리적인 '씀씀이'와 IMF 시절 '눈물의 드라마'를 모두가 다시 생각할 때다. <이준구 (경제부장)>이준구>
눈물의 IMF를 잊었나
입력 2002-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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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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