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쳤겠지만 어제 20일이 '제23회 장애인의 날'이었다. 장애인과 관련된 무성한 행사들이 4월의 바람을 타고 몰려 왔다가 물러간다. 하기는 '장애인의 날'이 시작된 유래도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군부 독재는 그들에게 도덕성과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수단의 하나로 '사회복지국가 건설'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때마침 UN은 '세계장애인의 해'를 선포하고 각 국에 장애인 정책 개발을 하도록 독려하게 되었고, 그 중에 하나로 이 날이 선포되었다.
참여정부 이후로 차별금지법의 논의가 활발히 대두되어 다소 양상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장애인과 인권의 문제는 별로 연결을 시키지 못하고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우리 주변에서 인권에 관한 관심사가 높아지는 듯하다.
하기는 이제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었으니 대한민국도 인권국가로 부상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독재 정권에 항거하며 극심한 인권의 침해를 받았던 뼈아픈 과거가 있고, 한국의 대통령이 인권투쟁의 공으로 한국 최초의 노벨 평화상을 수여받았다는 점에서는 사실상 우리는 이미 인권 국가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인권 또는 인권침해는 국민의 일반 사회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먼 다분히 제한된 정치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으며, 인권침해하면 수감자의 가족이나 개인의 신상에 관련된 인권침해, 불법감금, 고문,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강제 출국, 정치사범에 대한 억압, 노동조합의 시위에 대한 억압, 경찰에 의한 폭력적 시위제압 등만을 연상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성, 마이너리티, 힘이 없다는 이유 그리고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인권침해이다. 그러나 생각보다도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학력, 재산, 직업, 권력이 없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받고 있지만 그것을 인권침해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은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아마도 우리 주변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권침해의 대상으로 장애인을 지목할 수 있을 것 같다. 2001년 '장애인의 인권침해 유형 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의 83.2%가 사람으로 살아가며 거쳐야 하는 여러 과정에서 인권 침해를 당했던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예가 수없이 많겠지만, 가족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경우, 병원이나 시설 입원을 강요당하는 경우,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이혼을 요구당하는 경우, 장애 자녀를 출산했다는 이유로 이혼을 요구당하는 경우, 이혼과 함께 양육권을 침해당하는 경우 등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일반인의 실업률이 2.9%인데 반해 장애인의 실업률이 28.4%이다. 겨우 직장에 나간다 해도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2000년)의 43%인 79만원을 받는다. 자녀들은 대학교육을 받아야한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국민이 96%인데 장애인의 대학 진학률은 겨우 5.8%이다.
한동안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가 쟁점이 되었는데 약 70.5%의 장애인이 한달에 5번 정도 외출을 한다고 하니 우리 사회야말로 장애인들을 '사회감옥'에 가두어 두는 나라가 아니겠는가?
이제는 이러한 문제들도 인권침해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장애에 관련된 자료들은 이미 한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마이너리티로서 자리매김을 당했으며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온갖 불이익과 부당한 처우, 특히 학업과 취업의 기회를 거절당하게 되어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결과적으로 가히 '폭력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사회의 저변으로 밀려나 있다.
이제 인권은 우리 사회의 강력한 이상(理想)이고 인간 공동체의 비전이어야 한다. 우리는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인권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정열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것은 바로 창조적인 여러 것을 가능케 하며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도 인권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인권은 인류를 통합시키고, 평화와 정의, 상호에 대한 존경에 기반한 사회를 만들게 한다. 실현 불가능한 꿈같이 들릴 수도 있지만, 이는 전쟁과 갈등으로 상처받은 지구상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될 이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김형식(한국재활복지대학장)
장애인의 날에 생각하는 인권침해
입력 2003-04-21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3-04-21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