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일부 강남 부유층과 연예인을 대상으로 팔렸던 가짜 명품시계 `빈센트 앤 코' 파동 이후 귀족마케팅이라는 보통사람에게는 다소 느끼하게 다가오는 낯설은 용어가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미 경영학(마케팅)영역에서는 좀 된 것이긴 하지만, 이는 1%에 해당하는 소수의 상류층고객을 목표로 삼아 최상의 매출을 올린다는 마케팅 전략의 개념이다. 이 귀족마케팅은 점점 더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돼가고 다양성과 개별성의 연출이 하나의 사회·문화적 삶의 양식으로 자리잡아가는 시대에 부응하는 판매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귀족마케팅은 특히 기업(판매자)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을 위한 필연적 마케팅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귀족마케팅 기법의 실제를 들여다보면 전혀 귀족적 품격이나 위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근본적으로는, 없는 귀족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서구와 같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통해 대를 두고 이어오면서 자리잡은 귀족계층이 존재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당연히 이 마케팅의 타깃이 되는 것은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부유층이나 돈 많은 연예인이다. 이 점에서 그냥 부자마케팅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성 싶다.
귀족마케팅 기법의 실태는 천태만상이지만, 기본원리는 우리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있는 출세·성공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우리의 정서문화 습속을 자극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이 강박적 정서문화의 표출은 우선 가족(가문)의 부나 세력을 드러내 과시하려는 경향성으로 나타나며, 또 다른 하나는 우리 삶의 유형이 획일적 동일화(평등)에의 지향과 이에 따른 모방의 경향을 강하게 나타낸다는 점이다. 이는 흔히 말하는 `남이하면 나도 따라 한다'는 무조건적 모방의 행태로 잘 나타난다.
요즘 붐을 타고 있는 명품 호화결혼식이 이를 잘 반영한다. 돈많은 사람들이 한다는 데야 할말은 없지만, 사회적 명사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닌 신분에 단 한순간의 연출을 위해 굳이 수억원대의 호화결혼식을 해야할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경제적 능력에 부치는 이들까지도 명품 호화결혼식의 행렬에 기꺼이 가담한다는 사실이다. 이에는 의미나 가치나 질은 문제되지 않는다. 앞서 말한 빈센트 앤 코와 같은 수만원짜리 가짜명품시계가 수백만·수천만원에 팔려나가는 현상이나 신형으로 위장한 중고 외제차가 쑥쑥 팔려나가는 현상은 바로 이와같은 우리 정서문화를 잘 드러내주는 예다.
이는 성인들의 세계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몇 백만원짜리 카누나 래프팅같은 체험프로그램, 수천만원대의 초등학생 어학연수프로그램이 동이날 정도로 팔려 나간다. 자녀들을 명품귀족행렬에 끼어 넣고자 떼지어 몰리는 이 현상의 배후에도 강박적 정서문화의 습속이 도사리고 있다. 요즘 들먹이고 있는 국제중학교 설립 또한 내세우고 있는 그럴듯한 취지와 이념에도 불구하고, 점치고 있는 막강한 수요의 물결 밑에는 이와같은 정서문화의 습속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강박적 습속의 기제를 이용할 줄 아는 내·외국의 장사꾼들은, `한국에서 한몫 잡으려면 일단 명품외제의 레테르를 붙여 가격을 크게 높여야 한다'라는 것을 불문의 룰로 삼는다.
필자는 여기서 결코 명품 귀족마케팅 자체를 탓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는 어느나라에든 있고, 특히 변화해가는 현대 사회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마케팅 생존전략의 일환이다. 그리고 이로인해 계층간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된다느니 또는 위화감이 조성된다느니 하는 진부한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
짧게 말해, 이제 우리는 그것이 명품이든 귀족적인 것이든 특정의 무엇(현상)에 대해 `떼지어 몰리는' 우리식 행태의 천박스러움과 그 참을 수 없는 존재론적 가벼움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상적 생활의 차원을 이끌어가는 정치학의 토대가 단지 우리의 의식과 의지만이 아니라, 오히려 이 차원을 질기게 구속하고 몰아가는 정서문화의 차원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통찰해야 할 것이다. 이의 극복이 그토록 쉽지 않은 것은 이 차원이 일종의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송 재 룡(경희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