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법정단위 사용을 전면 금지한 개정 계량법이 시행되기 때문인데 이를 어길 경우 주의와 경고 조치를 받은 뒤 과태료 50만원을 물게 된다. 25일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정부의 도량형 표준화 정책에 따라 길이는 , 넓이는 ㎡, 부피는 ㎥, 무게는 단위로 표시해야 한다. 넓이를 나타내는 '평'과 '마지기', 무게를 재는 '돈쭝'과 '근', 길이를 재는 '자' 등 기존에 사용하던 단위는 사용할 수 없다. <편집자 주>
■ 비상걸린 기업들, 소비자 혼란 최소화 방안 마련 골머리
수십년, 수백년 이상 전통적으로 이용해온 도량형 표기를 갑자기 바꾸자니 일부 기업은 물론 소비자들의 혼란도 불가피하다. 소비자가 변형된 단위에 어려움을 느끼면 매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비법정단위를 사용해 온 기업들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단속을 면하면서도 소비자의 혼선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TV의 규격을 표시하는 '인치'를 쓸수 없게 된 TV생산업계는 ㎝로 표기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소비자들이 판단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인치 대신 '형' 표기를 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가령 40인치 TV의 경우 '40인치' 대신 '40형'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인치는 이제 쓸 수 없지만 '형'은 도량형이 아니어서 규제에 걸릴 것도 없고, ㎝보다는 혼란이 덜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에어컨업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나온 전자업계 카탈로그를 보면 18평형 에어컨의 경우 '18형 에어컨'이라고 표기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LG전자는 카탈로그에 인치, 평 대신 ㎝와 ㎡로 일단 규격을 표시해 놓고 주석을 달아 인치와 평으로 환산된 내용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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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산업은 7~8월 중 분양예정인 오산 세마 e-편한세상의 모델하우스의 평형 표시판을 모두 철거했고, 분양 카탈로그에도 평형 대신 ㎡로만 표기하기로 했다. GS건설 역시 7월 이후 분양 사업지의 홍보물을 ㎡만 사용한다는 원칙이며, 대우건설은 이와 관련해 조만간 사내 담당 부서 회의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건설사들은 아무래도 시행 초기 평 단위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어 대응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부 건설업체들은 소비자 혼선을 줄이기 위해 전자업계의 경우와 비슷하게 ㎡ 단위가 익숙해질 때까지 '34평형' 대신 '34형'이나 '34타입(TYPE)'을 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로 표기하고 일일이 평으로 환산해 설명해주기보다는 차라리 '형' '타입' 등으로 안내하는 것이 훨씬 소비자들의 혼란을 덜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아파트 시세와 분양정보 등을 제공하는 부동산 정보업체들도 도량형 표기법 통일에 대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총 15개의 회원사가 소속된 부동산정보협회는 지난 2월부터 5개월째 표기 전환 작업을 해오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건교부의 건축물관리대장 정보를 받아 전용면적을 통일하고, 평형 표기법을 써왔던 공급면적은 ㎡로 환산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라며 "공급면적과 전용면적은 모두 ㎡로 표기하고, 혼란을 막기 위해 기존 평형은 하단에 부기하는 방법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과 직접 대하는 유통업계는 규격 표기는 정부 시책대로 하되, 판매직원들을 통해 익숙한 도량형으로 환산했을 때 규격을 알려주는 방법을 쓸 계획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금은 공식적인 판매 단위는 g이지만 고객들에게는 돈쭝 단위로 얘기해주고 있고, 옷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허리 사이즈를 ㎝로 표시하지만 일부는 가격표에 인치로 표기하며 판매할 때는 인치 단위로 알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 예외를 인정받는 업계는 그나마 나은 상황
도량형 표기를 변경해야 하는 제품들과는 달리 타이어의 경우 '인치' 단위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대한타이어공업협회 관계자는 "정부측과 새 도량형 표기에 타이어는 제외키로 합의했다"며 "현재 타이어 규격 표기는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정한 표기법에 따라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항공업계도 이미 세계 표준 도량형을 따르고 있어 변동이 없다.
전세계 항공사는 고도는 피트로 하고 속도는 노트를 쓰고 있으며 공산권의 경우 고도를 미터로 쓰기도 해서 객실 스크린에 피트와 미터를 동시에 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항공업계는 또 탑승실적에 따라 무료항공권을 부여하거나 좌석승급을 해주는 마일리지 제도의 경우 '마일리지'라는 명칭 그대로 전 세계가 마일 단위로 고객에게 통보를 해주고 있어 역시 변경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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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를 인정받는 업계와 달리 개정 계량법이 적용되는 모든 업계에 대해 정부는 단속해 나갈 방침이다.
특히 건설사가 '평' 대신 쓰고 있는 '형'과 '타입(Type)'도 정부가 단속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산자부 관계자는 "건설사가 소비자 혼란을 줄이는 차원에서 제곱미터(㎡) 대신 기존의 평형과 비슷한 '형'과 '타입'을 쓰고 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기이한 표기법이며 세계화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며 "㎡ 외에 다른 표기법은 모두 단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산자부는 그러나 시행초기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 옆에 평형을 나란히 쓰는 표기는 금지하는 대신 본문 하단에 '100㎡는 과거 30평형에 해당한다'는 식으로 부기 표기는 허용키로 했다.
산자부는 일단 공공기관과 대기업만 우선적으로 단속하고, 중소 건설사와 개별 부동산중개업소, 부동산 정보업체들은 추후 법정계량단위 정착 여부를 지켜본 뒤 추후 포함시키기로 했다.
단속 대상은 7월 이후 분양하는 모델하우스와 입주자모집공고, 분양 카탈로그 등 상업적 거래용도로 쓰이는 것들이다.
산자부는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1차로 자치단체 공무원 명의, 2차로 지자체장 명의로 공문을 보내 각각 한달 내 시정토록 하고, 그래도 수정되지 않을 경우 25만~75만원의 과태료를 물도록 했다.
■각국의 도량형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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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나라는 지난 1961년부터 계량법에서 세계각국이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국제단위계(일명 '미터법')를 법정 계량단위로 채택하고 이 단위의 사용을 의무화했다. 말 그대로 '비법정' 계량단위인 평·마지기·야드·홉·되·근·돈 등은 46년전부터 쓰지 못하게 돼 있었다.
하지만 46년간이나 관행적으로 비법정 단위를 사용하다보니 이번 정부 제도 시행이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상황은 어떨까. 국제단위계 정착 노력을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1866년 미터법을 제정했지만 1994년 포장 및 표시에 관한 법 개정으로 야드-파운드와 미터단위 병용을 허용하고 있다. 즉 이중단위 병용이 허용되고 있는데 최근 미터화계획이 다시 추진중이다.
EU는 판매되는 모든 상품에 대한 국제단위계 사용을 2000년까지로 의무화했으나 1995년 다시 2010년까지로 연기한 상황이다.
영국은 1965년도에 1975년까지 국제단위계로 전환을 결정하고, 4년뒤 미터법 위원회를 설립했으나 소극적 자세로 임해 1980년 해체되고 다시 1985년 미터법이 제정됐다. 이에 2000년 1월 거래되는 모든 제품에 사용할 것을 법제화했다.
중국은 지난 1985년 국제단위계를 도입해 계량법을 제정한 이래 현재 국제단위계 사용의 성공 정착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 역시 1951년 계량법을 제정하고 민·관 합동의 보급추진위원회를 구성, 체계적으로 추진해 중국과 함께 국제단위계 사용의 성공 정착단계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