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이천시 호법면 냉동창고 '코리아 2000'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수십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부상자들은 화마의 고통으로 몸서리를 쳤다.

화재 현장에서 구조돼 오후 1시께 서울 강남구 베스티안병원으로 이송된 안승식(53·서울 도봉구)씨는 "보온재 마무리 작업을 하던중 한 아줌마가 '불이 났다'고 소리를 질러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며 "무조건 앞으로 내달렸고 창고를 50m정도 빠져나왔을 때 크게 펑소리가 들렸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되뇌었다.

함께 응급실에 실려온 임충월(45·여)씨는 온 몸에 붕대를 감은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이 번호로) 전화를 해달라"며 지인의 휴대전화 번호를 반복하다 응급치료를 받은 뒤 곧장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들과 함께 응급실에 실려온 박종영(38), 심영찬(50)씨는 현재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온몸에 각각 15∼35% 가량의 화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구로구 고척동에 있는 구로성심병원에도 화재 현장에서 구조된 인부 3명이 긴급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부상자는 천우한(33)씨를 비롯한 이경희(50), 최중한(50)씨로 천씨가 2∼3도 가량의 화상을 입어 중한 상태지만 이씨 등 나머지 2명은 침상에 앉은채 병원 치료를 받으며 안정을 취하고 있다.

한편 아비규환의 화재 현장에서 한 외국인 노동자가 목숨을 걸고 함께 일하던 40대 여성을 불길에서 구해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감동의 주인공은 우즈베키스탄인 외국인 노동자 하이루(32)씨.

하이루씨는 7일에도 여느 때처럼 새벽같이 출근해 냉동창고 안에서 순환하는 물이 얼지 않도록 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창 업무가 탄력을 받던 오전 10시께 갑자기 어디선가 시커먼 연기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전해지기 시작했다. 소형 냉동창고 여러 동 가운데 안쪽 창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였다.

그때 그는 한 40대 여성이 온 몸이 불길에 휩싸인채 땅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목격하고 무작정 등에 둘러업고 달렸다.

그는 "아줌마가 병원으로 옮겨지는 것까지는 봤는데 그 이후로는 모르겠네요. 적어도 큰 화상을 입었을 것 같아 많이 걱정돼요"라고 했다. 현재 이 여성은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루씨는 "정말 모두 데리고 나오고 싶었는데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어요. 한 사람이라도 구하고 싶었는데…. 나만 이렇게 혼자 건강하게 살아있는게 너무 미안해요. 제발 모두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