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인하게도(?) 화마에 스러져가는 국보 제1호를 환히 비춘 것은 그가 디자인한 조명시설이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죠. 600년 역사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설치한 조명이 허물어져가는 역사의 현장을 비추고 있었으니…."
18일 인천지하철공사에서 열린 '2008년 명품도시 인천만들기 공공디자인 국제포럼'에 강사로 초빙돼 인천을 방문한 정 대표는 "결국, 숭례문의 마지막 조명 디자이너가 되고 말았다"며 그날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대표로 있는 이온에스엘디가 전기설비 및 시공업체 등과 함께 숭례문 경관조명 설치 공사를 마무리한 것은 지난 2005년 12월. 이전에 설치돼 있던 130여개의 조명시설을 모두 없애고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는 1층 석조 구조물에 40개의 조명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비롯, 숭례문과 3~20m 거리를 두고 곳곳에 2층 목조건물을 비추는 조명시설을 설치하는 게 공사의 주요 내용이었다.
"직원 12명이 디자인 작업에 8개월을 매달렸습니다. 자문에 자문을 구해가며 숭례문의 위상과 아름다움을 한층 드높일 방안을 연구했고, 일본까지 날아가 오사카성의 경관조명 현황 등을 둘러보기도 했지요. 이같은 과정을 거쳐 불을 밝힌 숭례문의 경관조명은 문화재 야간 조명의 성공사례로 각광받았습니다."
그가 숭례문의 경관조명을 디자인할 때 가장 신경썼던 부분은 화재 위험이었다고 한다. 숭례문 외부에 조명시설을 설치한 것도 이 때문.
"화재 발생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목조 부분에는 전혀 전기 시설을 설치하지 않고 대신 외부에 기둥과 조명등을 설치, 건물에 빛을 비추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석조 부분에 조명시설을 설치할 때도 혹시라도 쥐가 전선을 갉아 먹을까봐 알루미늄 케이스로 전선을 밀봉하는 등 화재와 관련한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했지요. 국보 1호가 훼손될까봐 목조 건물에 못질 한번 하지 않았어요."
그는 "무엇보다 숭례문에 대한 시민들의 사랑을 북돋는데 경관조명이 한 몫을 했다고 항상 자부하고 있었는데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소실됐다"며 다시 한번 안타까움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