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Old Partner)

2008년/ 한국/ 78분/ 다큐멘터리
감독: 이충렬
출연: 최원균, 이삼순
개봉일: 2009.01.15.목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warnangsori
★★★★★★★ (7.0/ 10)


특별히 이렇다할 긴박한 순간의 포착이나 핏대 세워 강요하는 주제의식도 없고, 언제부턴가 다큐멘터리라 하면 당연히 있어야할 것처럼 익숙해져버린 내레이션조차 없는 '워낭소리'는 참으로 담백하고 심심한 작품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주인공 노인 내외와 그들의 손을 거쳐가는 세 마리 소들의 일상처럼 영화는 욕심이나 조급함 없이 유유자적 흐를 뿐인데 그 느긋함과 녹녹함이 스며들어 흥건히 골을 이루는 감정의 깊이는 결코 범상치 않다.

감독이 작품을 처음 기획했던 때는 2000년 즈음이었다고 한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10년 만에 개봉이 현실화되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제작과 개봉준비에 소요된 데는 구구절절 사연도 많았다. TV 방영을 목적으로 했던 처음의 소박한 기획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무산되었고, 점차 늘어난 기간과 이로 인해 불어난 제작비는 제작자와 감독을 애타게 했다. 하지만 당초 기획의도였던 쇠약해져 가는 '아버지'들에 대한 이미지를 남기고 싶다는 의도만은 끝끝내 지켜냈고 변할 수도 없었다고. 그 우직한 욕심은 우리가 숨가쁜 일상을 핑계로 내팽개친 아버지의 존재감과 더불어, 어쩌면 얼마 안 있어 동물도감 속에서나 흔적을 기억하게 될지도 모를 우리 소들의 정겹고 애틋한 모습까지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안 그런 영화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워낭소리'는 더욱 특별하게 작품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감흥의 폭이 온전히 관객 스스로의 몫인 작품이다. 지금처럼 수동적 영화보기가 익숙한 대부분의 관객들에겐 기대보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밋밋한 '이야기'로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더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포착하거나 감정이입에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연출가가 의도한 것이나 화면 안팎으로 존재했던 사실보다 과잉된 감동과 교훈까지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다른 빛으로 비쳐지는 삶의 가장 보편적인 교훈들을 차분히 은유함과 동시에 하루가 다르게 급속히 사라져 가는 시골 풍경들을 담아냄으로써 기록영화 최선의 몫까지 다해내고 있는 이 작품은 최소한 아름답고 따뜻한 화면 속 풍광만으로도 절반의 가치는 확보하고 있다.

제작사 측의 의도가 어떠했건 이 영화의 개봉시기는 작품의 본질과는 별개의 화제들을 동반하고 있기도 하다. 다시 한번 순박한 민심을 우롱하며 아픈 생채기만 남긴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가 그렇고, 새롭게 시작된 2009 기축년(己丑年)이 소띠의 해라는 점도 그렇다. 마치 새해를 위해 작정하고 준비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그 시기 적절함이 앙증(?)맞다는 느낌까지도 갖게 하는데, 아무쪼록 이런 인연이 단순한 우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올 새해는 우리 소처럼 묵묵히 우직하게 인내하며 제자리에서 노력하기만 해도 기필코 공익과 정의가 빛나는 한해가 되리란 긍정적 사인이 되었으면 하는 절실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