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자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선거인단대회에서 오세훈 후보가 열변을 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상 최초로 서울시장 재선 도전에 나선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오고집'으로 불린다.

 변호사로, 정치인으로, 그리고 서울시장이라는 행정가로서 그가 보여준 한결같은 모습이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시(26회)에 합격한 오 후보는 91년 대기업과의 아파트 일조권 소송을 맡아 승소하며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당시 '바위에 계란치기'라는 주변의 강한 만류에도 뚝심을 발휘, 헌법상 환경권이 실질적 권리로 인정받는 첫사례를 일궜다.
 
   이를 계기로 오 후보는 '오변호사, 배변호사', '그것이 알고 싶다' 등 각종 TV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훤칠한 키와 뛰어난 언변은 정치권에 입문, 성공 가도를달리게 한 발판이 됐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거머쥔 뒤에도 오 후보의 제 목소리 내기는 멈추지 않았다.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 소장그룹인 미래연대를 이끌며 '40대 개혁기수'로서 당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고, 초선 의원으로서 정치개혁특위 간사를 맡아 이른바 '오세훈 선거법'으로 불리는 3개 정치관계법 개정을 주도했다.
 
   2003년 9월 당 연찬회를 전후해 '5,6공 인사 용퇴론', '60대 노장 퇴진론'을 내걸고 당내 인적 쇄신 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자신은 정작 2004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비리로 얼룩졌던 '원로당'에 과감히 메스를 대면서 미련 없이 금배지를 포기한 것은 '정치인 오세훈'의 면모를 대중에 각인시킨 정치 인생의 일대 전환점이 됐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 출마로 그는 행정가로 변신을 시도했다. 취임과 함께 또다른 도전에 나서 한강르네상스, 시프트(장기전세주택), 광화문광장, 디자인 서울 등 각종 역점사업을 강단 있게 추진했다.
 
   환경, 디자인, 컬쳐노믹스 등 창조산업을 위한 오 후보의 앞서가는 고민과 고집은 서울의 도시경쟁력을 27위에서 12위로 끌어올렸고, 서울시 사상 최초의 청렴도 1위, 역대 최고의 대기 질 개선 등의 기록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그를 견제하는 쪽에선 역점사업의 성격을 들어 '이미지를 중시한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오 시장의 지난 4년 시정을 과거 프랑스에서 에펠탑을 세울 때 불거졌던 논란과 같다는 말도 나온다. 에펠탑 세우기와 같은 '오고집'의 도전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