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베트에서 가장 오래된 윰부라캉은 유럽의 성처럼 가파른 산꼭대기에 요새 형태로 솟아있다. 티베트 문화의 발상지이며 역사상 최초의 궁전이 있던 곳으로 토번 초대왕인 냐트리 찬포가 하늘에서 내려올때 이 자리로 떨어졌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경인일보=글┃김종화기자]베이징에서 출발해 48시간의 긴 기차여행을 통해 도착한 지역은 티베트의 정치와 문화, 종교의 중심지 '라싸(拉薩)'였다.

보통 티베트 여행자들은 라싸에서 머물며 달라이라마와 관련된 문화재들을 보곤 하지만, 우리는 라싸에서 약 200㎞ 거리에 있는

'체탕(澤當)'이라는 지역으로 다시 이동하기로 했다.

3일이나 되는 기차여행의 여독이 채 가시기 전에 체탕으로 이동하기로 한 것은 체탕을 중심으로 한 얄롱하 계곡이 티베트 문명의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얄롱하 계곡은 여느 문명의 발원지와 마찬가지로 물이 풍부하고 기후가 따뜻해 이른 시기부터 농사를 지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체탕에는 티베트 민족의 탄생 신화, 티베트 최초의 궁전과 법전, 찬포(왕), 경서 등 티베트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이야기와 유적들이 있다. 이로 인해 티베트인들은 얄롱하 계곡을 '어머니 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티베트 민족의 근원지 체탕(澤當)

체탕이라는 이름은 티베트어로 '논다'는 뜻의 '체(澤)'와 평원이라는 뜻의 '탕(當)'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다. 라싸에서 체탕으로 가려면 3시간 가량 얄롱하 계곡을 따라 이동해야 한다. 지난 2월에 찾았던 얄롱하 계곡은 건기라는 기후적 특성 때문에 수량이 많지 않았지만, 계곡의 폭을 통해 그 규모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계곡 주변의 풍광을 즐기며 체탕에 도착했을 때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 드는 평야가 나타났다.이 넓은 평야에서 중국 고대 국가들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한 국가였던 티베트 초기 왕조인 토번(吐蕃) 제국이 시작됐던 것이다.

티베트 민족의 탄생신화 중 대표적인 것은 역사서인 '서장왕통기(西裝王統記)'에 나오는 원숭이와 나찰녀(羅刹女) 이야기다. 체탕의 얄롱하 계곡에서 바로 이 이야기가 발원된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아주 오래전 티베트의 수호신인 관세음보살은 원래 신(神)이었던 원숭이에게 계율을 주어 설역고원(雪域高原)에서 수행을 하게 했다.열심히 수행을 하던 원숭이에게 어느 날 나찰녀가 나타나 결혼을 청해 왔지만, 원숭이는 자신이 수행자이기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고 완강히 거절한다. 그러자 나찰녀는 자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다른 요괴와 결혼해 수많은 요괴 자손들을 낳을 수밖에 없다며 그를 위협했다. 심지어 결혼해 주지 않으면 목숨을 끊겠다고까지 협박을 했다.

▲ 농번기를 앞두고 체탕 평야의 밭고랑들이기하학적인 무늬를 연출하고 있다.

처음에 단호히 거절하던 원숭이도 결국은 자신을 사랑하는 나찰녀의 애틋한 마음에 흔들려 보타산(普陀山)에 머물고 있던 관세음보살에게 찾아가 이 문제를 상의했다. 관세음보살은 "이것도 하늘의 뜻이니 나찰녀와 결혼해 이 설역(雪域)에 인류를 번영시켜라. 이것 또한 선행이다"며 결혼을 허락했다. 그리하여 원숭이와 나찰녀는 부부가 돼 여섯 마리의 아기 원숭이를 낳았고 자식들을 과일나무 숲에 보내 스스로 먹고 살게 했다.

3년 후 원숭이의 후예들은 더욱 번성해 500여 마리에 이르게 돼 숲 속의 자연적인 식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자식들이 굶주리는 것을 본 원숭이는 관세음보살에게 다시 도움을 청했다. 관세음보살은 오곡종자(五穀種子)를 수미산에서 얻어 와 얄롱하 계곡에 심어 식량을 충당케 했다. 그런데 오곡을 먹고 살아가게 된 원숭이들은 털이 벗겨지고 꼬리가 짧아졌고, 인간처럼 두발로 걷게 됐다고 한다. 티베트인들은 두 선조, 즉 원숭이로부터는 근면과 친절, 종교의 열정, 연민을 물려받았고, 나찰녀에게서는 무뚝뚝함과 탐욕, 격정을 물려 받았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을 갖고 순례지로서 체탕을 방문하는 티베트인들은 얄롱하 계곡 부근에 위치한 험준한 산 속의 동굴 속에서 기도를 하는 풍습을 이어가고 있다.

▲ 티베트 민족 기원도. 청나라 당시 그려진 이 탱화는 티베트 민족 전설인 원숭이와 나찰녀 이야기를 비롯해 토번 초기 찬포(왕) 이야기를 담고 있다.

# 티베트 최초의 왕궁 윰부라캉과 냐트리 찬포

체탕에 있는 여러 유적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체탕 도심에서 30분 가량 외곽으로 가야 만날 수 있는 티베트 최초의 왕궁인 윰부라캉(雍佈拉康)이다. 윰부라캉이라는 이름은 티베트어로 '어미 사슴 뒷다리 위의 궁전'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윰부라캉은 티베트 최초의 왕인 냐트리 찬포가 건설한 이후 티베트 전역을 최초로 통일한 손챈감포 왕이 라싸로 천도할 때까지 32명의 왕이 왕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윰부라캉을 건설한 냐트리 찬포는 티베트 역사서에 왕통의 계보가 명확하게 기록돼 있는 첫 번째 인물이다. 티베트 역사 기록에 보면 냐트리 찬포는 티베트 동부의 보미지역 사람으로 용모가 준수했고 힘이 장사였지만 오리처럼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어서 악귀의 화신이라고 의심을 받아 고향에서 쫓겨났다. 그 후 얄롱으로 가 토번 최초의 왕이 됐다.

▲ 윰부라캉에서 바라본 바로 앞 마을과 드넓은 평양지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윰부라캉은 넓은 평야 가운데 우뚝 솟은 언덕 위에 건설됐다. 고대에는 단순히 평야를 조망하기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넓은 들판에서 티베트 백성들이 일궈낸 곡물을 빼앗기 위해 침입한 이민족과의 싸움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언덕 위에 요새 형태를 띤 왕궁을 건설했을 것이다. 실제 윰부라캉에 올라서면 넓은 평야지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불교를 믿는 손챈감포 왕이 수도를 이 곳 체탕지역에서 라싸로 옮기고 나서는 윰부라캉은 궁전이 아닌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곳을 찾는 순례자들은 황, 적, 녹, 백, 청색 등 오색 천에 불교 경전을 적은 '타루초'를 걸어 놓으며 건강을 기원한다. 취재팀도 향후 여정의 무사함을 기도하며 티베트 최초의 사원인 '사뮈에 사원'과 '창조사'를 향해 떠났다.

※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