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13]에필로그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13]에필로그 지면기사

    한국인에게 티베트는 '미지의 문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지리적으로 봤을 때 중국의 서쪽 끝에 위치한 티베트와 한국은 수천 ㎞가 떨어져 있어 쉽게 갈 수 없는 미지의 땅이다. 티베트에 대한 정보도 쉽게 접할 수 없다. 인도로 망명해 티베트 독립운동을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達賴喇痲)'의 나라라는 정도만이 알려져 있다. 이번 기획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취재팀은 티베트의 정치와 문화, 종교의 중심지인 라싸(拉薩)는 물론, 수백 ㎞의 장도에 올라 체탕(澤當)과 시가체(日喀則), 장체(江孜)라는 주요 도시들을 찾아 나섰다.이 도시들을 방문하며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티베트 불교와 그들의 역사를 추적했다. '밀교(密敎)'라고 불리는 그들의 전통 불교, 불교가 뿌리를 내리기 이전 티베트인들의 전통 사상 역할을 했던 원시 종교인 '본교(本敎)'를 소개하며, 한국불교와도 어떤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그리고 앞서 밝혔듯 우리는 티베트를 대표하는 '달라이 라마'와 관련한 문화재들에 국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티베트 불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한국인들에게는 많이 소개되지 않은 체탕을 방문해 티베트 민족 탄생 신화와 티베트 최초의 왕궁인 윰부라캉(雍佈拉康), 티베트 최초의 법당 창주사(昌珠寺)를 방문했다. 이를 통해 그동안 '달라이라마'의 도시로만 알려져 있던 라싸의 탄생 비화, 달라이 라마에 가려져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판첸라마(班禪額爾德尼)' 등은 우리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길가에서 오체투지(五體投地·두 무릎과 두 팔, 그리고 머리를 땅에 대고 하는 절)를 하며 라싸로 가고 있는 티베트인들을 보며 그들의 신앙심에 감동받기도 했다. 순례자들은 수백 ㎞를 수년에 걸쳐 오체투지로 가고 있지만 힘든 내색 보다는 밝게 웃고 있었고, 그들의 미소는 마치 부처님의 미소처럼 느껴졌다. 평생 한 번 이상 오체투지로 라싸로의 순례길을 떠나는 티베트인들은 힘든 그 순례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결국 티베트인들에게 성도(城都) 라싸는 정치와 행정, 문화의 중심지를 넘어 '성지(聖地)'였던

  •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11]장체에서 만난 백거사와 드종요새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11]장체에서 만난 백거사와 드종요새 지면기사

    [경인일보=글┃김종화기자]티베트인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망명길에 오른 후 티베트를 이끌고 있는 판첸 라마가 머무르는 도시 시가체(日喀則). 시가체는 수도 라싸(拉薩)와 다른 차분한 모습이었다. 역대 판첸라마의 영탑이 모셔져 있는 타쉬룬포 사원에서도 라싸의 포탈라궁과 조캉사원과 같이 북적대는 모습보다는 평온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가체에서 하룻밤을 보낸 취재팀은 다음날 아침 마지막 방문지로 정한 티베트 중부지역 중심도시 장체(江孜)로 출발했다. 마지막 방문지로 장체를 찾는 것은 혼란했던 근대사 속에 치열한 삶을 살았던 티베트인들의 숨결을 느껴 보기 위해서다. 시가체에서 장체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차량으로 달리면 도착할 수 있다.# 티베트 제3의 도시 장체여느 티베트 도시와 같이 장체도 5천m에 이르는 고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고원 도시였다.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가 머무르는 도시는 아니지만, 장체는 에베레스트를 넘어 네팔로 가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도시다. 이런 까닭에 장체에도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을 상대로 한 시장이 발달해 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지역의 지하자원 개발에 관심을 갖고, 교통의 요충지인 장체 개발에도 공을 들여 인근 대도시인 시가체, 라싸와 아스팔트 도로로 연결해 놨다. 중국 정부의 이런 관심 때문일까. 취재팀이 점심을 먹기 위해 도착한 장체 번화가에는 중국 본토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과 상점이 많았다. 그리고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드물지만 힌두교인들도 눈에 띄었다.# 하얀 거탑, 백거사(白居寺)장체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백거사'다. 우리는 백거사로 가기 위해 점심을 먹고 거리로 나섰다.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노점상이다.한국처럼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노점상과 불교 용품을 파는 곳들이 섞여 있었다. 불교 용품을 파는 노점상에는 10대 판첸 라마의 사진을 팔기도 했는데, 중국 정부로부터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14대 달라이 라마의 사진은 정치적인 문제 때문인지 찾아 볼 수 없었다.10여분쯤 걸었을 때 웅장한

  •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10]정신적 지도자 판첸라마와 시가체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10]정신적 지도자 판첸라마와 시가체 지면기사

    [경인일보=글┃김종화기자]라싸(拉薩)에서 출발해 캄발라 고개를 힘겹게 넘어선 우리는 가옥 30여채가 모여 있는 작은 마을에 머물렀다. 라싸가 도심화돼가며 티베트 전통 양식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이런 교외의 작은 마을들은 아직도 현지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부터 쉽게 알 수 있었다. 취재팀이 들어선 음식점 한 편에는 티베트인의 정신적인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칭송받고 있는 '판첸라마'의 사진과 불상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사진 앞에는 꽃이 놓여 있었다. 음식점을 찾은 손님에게 식당 주인은 물 외에 그들이 즐겨 마시는 수유차를 내놨다. 수유차는 야크에서 나오는 우유 또는 버터, 차와 약간의 소금을 넣어 만든다. 손님이 다 마시면 수유차를 계속 찻잔에 채워준다.# 시가체(日喀則)로 가는 길짜고 매운 맛이 강하며, 야채를 많이 사용해 만드는 한국 음식에 비해 티베트 음식은 기름지기때문에 한국 사람의 입맛에 딱 맞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양고기 구이의 경우 한국 사람들이 호기심에 맛을 보기는 하지만, 한끼 식사로 티베트 음식만 먹기에는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아침 식사후 우리는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5천m가 넘는 캄발라 고개를 넘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사막과 같은 평야를 달렸다. 멀리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손에 잡힐듯이 보였지만 1시간이 가고 2시간이 지나도 커지거나 작아지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가끔 풀을 먹기 위해 이동하던 양들이 길을 막고 있어 쉬어가기도 했는데, 건조한 티베트 고원평야에서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티베트 전통 가옥과 오체투지를 하며 라싸로 순례길을 떠난 티베트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길거리에서 쉬고 있는 티베트인들은 외국 여행객들이 마냥 신기한 듯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시가체로 이동하며 재미있었던 것을 꼽으라면 교통규제 제도다. 한국에서는 고속도로나 한가한 교외의 도로에 과속 차량 단속용 카메라를 설치하지만, 이곳에는 단속 카메라가 없다. 티베트에서는 과속 차량 단속 구간이 시작하는 지

  •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9]하늘 세계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9]하늘 세계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지면기사

    [경인일보=글┃김종화기자]취재팀은 그동안 라싸(拉薩)와 체탕(澤當)을 중심으로 티베트 문화의 시작과 불교에 대해서 둘러봤다. 윰부라캉(雍佈拉康)과 사뮈에 사원(桑耶寺院), 포탈라궁(布達拉宮), 조캉사원(大昭寺) 등 지금까지 여러 문화재를 둘러보며 현장에서 티베트인들을 지켜 봤지만, 사실 이런 곳에서는 그들의 삶을 피상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티베트가 한반도 면적의 약 6배(123만㎢)인 점을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방문한 지역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우리는 네팔, 인도와 접경한 티베트의 서쪽지역 문화를 살펴 보기로 하고, 서부지역의 중심 도시인 시가체(日喀則)로 향했다. 시가체는 티베트인들이 달라이 라마 못지않게 정신적인 지도자로 믿고 의지하는 '판첸라마(班禪額爾德尼)'가 머무르고 있는 도시다.# 바람도 불경을 읽는 티베트티베트 제2의 수도라고 불리기도 하는 시가체는 라싸에서 280여㎞ 떨어져 있다. 도로망이 좋지 않은 티베트에서 280여㎞라는 거리는 자칫 게으름을 피우면 하루 만에 도착하기 힘든 거리다. 시가체로 가는 길은 라싸강 상류를 따라 이동하다 네팔까지 연장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칭짱열차 공사 구간을 따라 가는 방법과, 해발 4천900m라고 알려져 있는 캄발라 고개를 넘어 암드록쵸 호수, 간체를 거쳐 가는 길 두가지로 나뉜다. 취재팀은 라싸강을 따라 이동하는 경우 빠를지 모르지만 티베트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암드록쵸 호수를 지나는 길을 선택했다.라싸 도심을 벗어나자 모든 집들의 지붕에 오색 천으로 만들어진 깃발이 꽂혀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이 깃발은 오색 천에 티베트 글로 경전을 쓴 '타르쵸'다. '타르쵸'는 깃발처럼 나뭇가지에 묶어 지붕마다 걸려 있었다. 또 양과 야크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초원을 찾아다니는 티베트인의 손에도 들려 있었고,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의 짐을 실어 나르는 경운기에도 걸려 있었다. 또 마을 어귀와 차량이 지나 다니는 고개 정상, 산 능선 등에도 어김없이 타르쵸가 걸려 휘날리고 있다. 취

  •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8]다시 찾은 라싸에서 달라이 라마의 흔적찾기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8]다시 찾은 라싸에서 달라이 라마의 흔적찾기 지면기사

    16세기 3대 '소남 갸초' 첫 칭호 받으며 '달라이라마제도' 성립몽고로부터 주권 물려 받은후 정치적·종교적 통치권자 역할최대성지 포탈라궁 1천개의 방 역대 라마 유물·영혼탑 보관'여름별장' 노블링카, '텐진 갸쵸' 망명전 명상실 등 개방[경인일보=글┃김종화기자]간덴사원(甘丹寺) 답사 후 다시 라싸( 拉薩)로 돌아온 취재팀은 티베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 달라이 라마'와 관련된 문화재를 둘러보기로 했다. 라싸는 7세기 중반 토번(吐蕃) 왕조의 제33대 왕인손챈감포(松贊幹布ㆍ581~649) 수도를 체탕에서 이곳으로 옮기면서 티베트의 중심도시로 부각된다. 라싸는 명나라 말기부터 지금까지 티베트 불교 최고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본거지이며 정치뿐 아니라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라싸로 들어서자 오체투지(五體投地·두 무릎과 두 팔, 그리고 머리를 땅에 대고 하는 절)를 하고 있는 티베트인들이 눈에 띄었다. 티베트인은 신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위해 살아가면서 한번 이상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라싸까지 오체투지를 하며 순례를 떠난다. 라싸에 도착한 티베트인들은 포탈라궁(布達拉宮) 주변을 마니차(불경을 새겨 손으로 돌리는 법구)를 돌리며 순례한 후 조캉사원에서 며칠이고 오체투지를 하며 기도한다. 여러 사원 중 티베트인들이 포탈라궁을 가장 많이 찾는 것은 이들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관련이 있다. 포탈라궁은 7세기 손챈감포에 의해 처음 세워졌지만 17세기경인 5대 달라이 라마 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그렇다면 대체 '달라이 라마'는 누구인가? 달라이 라마의 '달라이(達賴)'는 몽골어로 '큰 바다'라는 뜻이고 '라마(喇痲)'는 티베트어로 '스승'이라는 의미다. 즉 '넓은 바다와 같이 넓고 큰 덕의 소유자인 스승'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또,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겔룩파(格魯派)의 수장인 법왕의 호칭이며, 티베트 불교를 이끈 역대 전생활불(轉生活佛)에 대한 속칭이다. 전생활불은 인도의 윤회사상과 티베

  •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7]티베트 개혁을 이끈 총카파와 간덴사원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7]티베트 개혁을 이끈 총카파와 간덴사원 지면기사

    [경인일보=글┃김종화기자]티베트의 수도 라싸((拉薩)에서 조캉사원(大昭寺)을 둘러 본 취재팀은 당초 라싸 서쪽에 위치한 시가체(日喀則)로 떠날 예정이었지만, 이곳에 하루 더 머물며 세라사원(色拉寺), 드레풍사원(哲蚌寺)과 함께 라싸의 3대 사원으로 꼽는 '간덴사원(甘丹寺)'을 둘러 보기로 했다. 전날 조캉사원을 방문했을 당시 현지 가이드로부터 간덴사원이 티베트 불교의 여러 종파 중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겔룩파(格魯派)의 총 본산이라는 말을 듣고 힘들어도 반드시 방문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간덴사원은 라싸시내에서 동쪽으로 50여㎞ 거리에 떨어져 있는 해발고도 4천 200m 의 방코르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라싸의 해발고도가 3천600m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곳으로의 이동이 다소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티베트의 산들은 넓은 고원지대에 우똑 솟은 형상이어서 경사도가 심한 산길을 갑작스럽게 올라가야 하는 데다가 산소부족으로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겔룩파의 본산 간덴사원 가는 길간덴사원으로 가기위해 우리는 라싸대교를 넘었다. 라싸대교를 건너자 10여 채의 티베트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통마을의 정겨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체탕에서 라싸로 올때도 그랬지만, 이곳 청소년들이 양과 야크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강변으로 가축을 몰고 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체탕과의 차이가 있다면 라싸의 들판에는 비닐하우스가 가득 차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비닐하우스에서는 채소를 기르고 있었다. 공산품이 귀한 티베트에서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시설채소 농사는 자본이 풍족한 한족(漢族)들 차지다.비닐하우스가 모여 있는 곳을 지나자 모내기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농부들, 그 뒤로 티베트 전통마을이 나타났다. 잘 포장된 도로를 30여분 쯤 달렸을 때 다쯔현이라는 마을 부근에서 간덴사원으로 오르는 삼거리가 나타났다. 삼거리에서 평야를 등지고 산위를 바라보자 간덴사원이 마치 산꼭대기에 걸려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간덴사원이 위치한 산등성이까지 오르기는 버거운 편인데, 고대 티베트인들은

  •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6]티베트 불교의 산실 조캉사원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6]티베트 불교의 산실 조캉사원 지면기사

    [경인일보=글┃김종화기자]체탕(澤當)에서의 바쁜 일정을 소화한 후 도착한 라싸(拉薩)에서의 첫 밤은 그 동안 쌓인 피로를 풀어 주기에 충분했다. 다음날 취재팀은 아침 일찍 라싸 시내에 위치한 문화재를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싸하면 포탈라궁과 노블랑카 등의 유적을 우선 떠올리지만, 취재팀은 티베트 전역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바코르 광장으로 먼저 향했다. 바코르 광장은 '조캉사원(大昭寺)'으로 향하는 순례로일뿐 아니라 티베트 최대의 시장이다. 이곳에서 사원에 바칠 공물부터 여행자들의 기념품까지 온갖 물건을 파는 장사꾼과 장을 보러 나온 티베트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영험한 석가불상을 모시고 있는 조캉사원우리는 바코르 광장 곁에 있는 조캉사원으로 향했다. 포탈라궁과 노블랑카가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인 지도자인 달라이라마로 인해 신성시 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곳 신도들이 신앙생활을 위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바로 조캉사원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조캉사원 정문 앞에는 많은 티베트인들이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고 있었고, 수백명의 인파가 사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 서 있었다. 오체투지는 중생(衆生)이 빠지기 쉬운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기 위해 하는 불가의 기도법으로 이마, 양팔과 팔꿈치, 양발과 무릎 이렇게 다섯 부분을 땅에 닿으며 절하는 것을 말한다. 또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조캉사원 주변을 돌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티베트인들이 조캉사원을 한 번 이상 찾는 이유는 이곳에 영험(靈驗)하다는 석가불상이 있기 때문이다. 불교 국가인 티베트에는 수많은 사원이 있지만, 대부분 그 곳에 모셔져 있는 것은 석가불상이 아닌 티베트에 불교를 전파시킨 파드마 삼바바, 인도 고승 아티샤, 황교파의 창시자 총카파, 역대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 등의 조각상과 벽화 그림 등이다. 하지만 조캉사원에는 당(唐)나라 문성공주(文成公主)가 손챈감포(松贊幹布)에게 시집올때 가져 온 세계 유일의 석가모니 등신불(실물 크기의 불상)이 있다. 이 등신불은 석가모니 12세 때의

  •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5]티베트 전성기 이끈 손챈감포와 라싸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5]티베트 전성기 이끈 손챈감포와 라싸 지면기사

    [경인일보=글┃김종화기자]취재팀은 체탕(澤當)에서 초기 티베트 유적을 살펴본 후 한국인들이 티베트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도시인 '라싸(拉薩)'로 향했다. 체탕에서 라싸까지의 거리는 약 200㎞.3시간 동안 덜컹 거리는 비포장도로를 지날 수밖에 없었지만 차창 너머로 티베트인들의 마을을 바라보는 풍경도 나쁘지는 않았다. 오후 늦은 시간에 도착한 라싸는 도시 외곽에 험준한 산이 감싸고 있었고 도심은 넓은 평야가 자리한 고원지대였다. 해발 3천600m에 위치한 라싸는 티베트어로 '신의 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곳은 연평균기온이 8.3℃이며 최한월(1월) 평균기온은 -1.7℃, 최난월(6월) 평균기온은 16.7℃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는 훨씬 따뜻한 기후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라싸는 연강수량이 400㎜에 불과하지만 강수의 대부분이 여름에 집중돼 티베트 지역 중 농업에 적합한 곳 중 한 곳으로 꼽히고 있다.# 티베트의 위대한 왕 손챈감포7세기 중반 토번(吐蕃) 왕조의 제33대 왕인 손챈감포 왕이 수도를 체탕에서 라싸로 이동하면서 라싸는 티베트인의 중심도시로 부각된다. 이후 라싸는 명나라 말기부터 티베트 불교 최고 지도자인 달라이라마의 본거지가 돼 정치뿐 아니라 종교의 중심지 역할도 하고 있다. 라싸로 천도한 손챈감포(松贊幹布ㆍ581~649)는 티베트인들이 위대한 왕 중 한명으로 꼽는 인물이다. 손챈감포와 관련된 이야기는 체탕의 윰부라캉(雍佈拉康)과 창조사(昌珠寺), 사뮈에사원을 들렀을 때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 바 있다. 티베트 역사서에 따르면 손챈감포는 위대한 여느 왕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용기가 있어 아버지인 남리 손챈왕과 신하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 손챈감포가 13세가 되는 해에 아버지 남리 손챈이 독살당하자 그는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손챈감포가 즉위할 당시는 닥포, 공보, 장중, 숨파 등지에서 반란이 이어져 혼란한 시기였다.왕으로 등극한 손챈감포는 먼저 그의 아버지를 독살한 사람을 찾아 처단한 후 반란지역을 잇달아 복속시켰다. 그는

  •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4]라싸로 가는 길에서 만난 창주사와 사뮈에사원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4]라싸로 가는 길에서 만난 창주사와 사뮈에사원 지면기사

    [경인일보=글┃김종화기자]베이징에서 칭짱(靑藏) 열차에 올라 48시간의 여정을 보낸 후 라싸(拉薩)를 거쳐 도착한 체탕(澤當)은 조용한 시골마을의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체탕 일대는 티베트 최초의 왕조가 탄생한 후 32명의 찬포(王)가 활동했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한산한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체탕에는 여러 가지 과일과 농산물을 파는 가게가 즐비한 시장이 선다. 한국의 밤은 요란한 네온사인과 분주한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체탕에서 만난 티베트의 밤은 그렇지 않았다. 해가 지자 시내 중심에 흐르는 하천 주변에 설치돼 있는 가로등에 불빛이 들어오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하지만 저녁 운동을 하는 사람 외에는 그다지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듯했다. 더구나 왕복 4차로 도로가 도심을 가로지르고 있는데, 차량이 많지 않아 아무렇게나 거닐어도 거리낌이 없는 한산한 느낌을 줬다. 티베트에서 맞게 된 첫 밤은 한국과 다른 여러가지 느낌을 주며 그렇게 깊어만 갔다.# 티베트 최초의 법당 창주사(昌珠寺)티베트 최초의 법당인 창주사는 티베트 여행객들에게 체탕 3대 유적 중 하나로 꼽힌다. 체탕 3대 유적에는 전에 찾아 갔던 윰부라캉과 사뮈에 사원도 포함된다. 창주사는 체탕시내에서 5㎞ 떨어진 넓은 평야 가운데 위치해 있다. 이른 아침에 찾은 창주사에는 참배객들을 대상으로 불교용품을 팔기 위해 좌판을 차린 사람들도 많았다. 길게 선 참배객들의 줄에서 티베트인들이 얼마나 창주사를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창주사는 티베트인들에게 매라는 뜻의 '트란'과 용을 뜻하는 '드룩'이 합쳐진 '트란드룩'이라 불린다. '트란드룩'이라는 단어는 전설에 의하면 법당을 건설할 때 용이 소란을 피웠는데 손챈감포 왕이 명상을 통해 매에게 힘을 부여해 용을 제압한 것에서 연유했다고 한다.윰부라캉도 궁전 치고는 작게 느껴졌었지만 창주사는 티베트 최초의 법당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사찰이었다. 창주사는 승려들의 거주공간과 예배공간인 불전(佛殿)이 분리돼 있는데 이는 티베트 불교 사원의 전형적인 형태다. 2층 형태로 돼 있는 창주사의

  •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화보]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화보]

  •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3]티베트 민족과 국가의 시원을 찾아서-체탕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3]티베트 민족과 국가의 시원을 찾아서-체탕 지면기사

    [경인일보=글┃김종화기자]베이징에서 출발해 48시간의 긴 기차여행을 통해 도착한 지역은 티베트의 정치와 문화, 종교의 중심지 '라싸(拉薩)'였다.보통 티베트 여행자들은 라싸에서 머물며 달라이라마와 관련된 문화재들을 보곤 하지만, 우리는 라싸에서 약 200㎞ 거리에 있는'체탕(澤當)'이라는 지역으로 다시 이동하기로 했다.3일이나 되는 기차여행의 여독이 채 가시기 전에 체탕으로 이동하기로 한 것은 체탕을 중심으로 한 얄롱하 계곡이 티베트 문명의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얄롱하 계곡은 여느 문명의 발원지와 마찬가지로 물이 풍부하고 기후가 따뜻해 이른 시기부터 농사를 지었던 것으로 전해진다.그리고 체탕에는 티베트 민족의 탄생 신화, 티베트 최초의 궁전과 법전, 찬포(왕), 경서 등 티베트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될중요한 이야기와 유적들이 있다. 이로 인해 티베트인들은 얄롱하 계곡을 '어머니 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티베트 민족의 근원지 체탕(澤當)체탕이라는 이름은 티베트어로 '논다'는 뜻의 '체(澤)'와 평원이라는 뜻의 '탕(當)'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다. 라싸에서 체탕으로 가려면 3시간 가량 얄롱하 계곡을 따라 이동해야 한다. 지난 2월에 찾았던 얄롱하 계곡은 건기라는 기후적 특성 때문에 수량이 많지 않았지만, 계곡의 폭을 통해 그 규모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계곡 주변의 풍광을 즐기며 체탕에 도착했을 때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 드는 평야가 나타났다.이 넓은 평야에서 중국 고대 국가들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한 국가였던 티베트 초기 왕조인 토번(吐蕃) 제국이 시작됐던 것이다.티베트 민족의 탄생신화 중 대표적인 것은 역사서인 '서장왕통기(西裝王統記)'에 나오는 원숭이와 나찰녀(羅刹女) 이야기다. 체탕의 얄롱하 계곡에서 바로 이 이야기가 발원된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다.아주 오래전 티베트의 수호신인 관세음보살은 원래 신(神)이었던 원숭이에게 계율을 주어 설역고원(雪域高原)에서 수행을 하게 했다.열심히 수행을 하던 원숭이에게 어느 날 나찰녀가 나타나 결혼을 청해 왔지만, 원숭이는 자신이 수행자이기 때문에 결혼할

  •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2]미지의 세계 티베트 가는길-칭짱열차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2]미지의 세계 티베트 가는길-칭짱열차 지면기사

    [경인일보=글┃김종화기자·사진┃임열수기자]티베트는 드넓은 중국 영토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다. 히말라야 산맥 해발 4천m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티베트는 주변에 펼쳐진 높은 습곡산맥과 빙하로 인해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곳이다. 여기에다 중국의 비자발급과 별도로 현지 여행사를 통해 티베트 행정당국으로부터 여행 허가를 받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중국 본토에서 티베트로 가는 교통편은 크게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과 대륙횡단열차인 '칭짱철도(靑藏鐵路)'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두 교통편 모두 티베트의 수도인 '라싸(拉薩)'라는 도시로 이어져 있다. 라싸는 분열된 티베트 민족을 하나로 통합시킨 손챈감포(松贊干布)라는 고대 왕조의 왕이 수도로 정한 이후 1천300여년째 정치와 종교·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사실 버스나 자가용 등 차량으로도 티베트에 들어갈 수 있지만 베이징을 비롯한 동부권에서 수천㎞나 떨어져 있기에 현실적으로 차량 이동은 어려움이 많다. 특히 해발고도 4천m 이상인 티베트고원을 자가 차량으로 가로질러 티베트에 들어간다는 것은 고산병으로 인해 힘든 여정이 될 수밖에 없다. 고산병은 해발고도 2천500~3천m 이상의 산에 올랐을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두통, 현기증, 구토, 호흡곤란 등으로 나타난다. 고산병으로 인해 1주일 이상의 여행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고산지대에 대한 적응을 위해 '칭짱열차'를 이용해서 티베트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늘 고원으로 가는 칭짱열차칭짱열차는 중국 칭하이성(靑海省)과 티베트를 잇는 열차를 말한다. 그래서 이름도 칭하이성의 '칭(靑)'과 티베트의 중국식 표현인 시짱(西藏)의 '짱(藏)'에서 이름을 따 '칭짱열차'라고 한다. 공식 이름은 칭짱선(靑藏線)이다. 칭짱열차는 티베트인이 신의 영역으로 신성시하는 쿤룬산(崑崙山)과 탕구라산(唐古拉山)을 가로지르고 있어 '하늘길(天路)'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칭짱철도는 다양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칭짱철도 구간 중 해발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은 5천72m인 탕구라산으로 페루철도의 4천817m보다 255m가 높아

  •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화보]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화보]

  •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화보]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화보]

  •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1]프롤로그·역사속으로 자취 감춘 티베트

    [문명을 등진 '영혼의 땅' 티베트에 가다·1]프롤로그·역사속으로 자취 감춘 티베트 지면기사

    [경인일보=글┃김종화기자]아름다운 경관이 감동을 주는 설산(雪山), 그와는 또다른 느낌의 푸른 호수와 초원의 풍경, 휘황찬란한 고대 문화유적지들이 공존하는 지역 티베트.히말라야 산맥 북서쪽에 자리잡은 티베트는 대략 1천만 년 전에 융기한 대고원으로 평균 해발이 4천m에 이르러 '세계의 지붕'이라 불린다. 총면적은 약 126만㎢로 중국 전영토의 13%에 해당될 정도로 광활한 곳이다. 하지만 티베트는 지리적 상황뿐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고립된 곳이라 특별한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찾아갈 엄두조차 내기 쉽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중국에서는 티베트를 서쪽의 보물창고라는 뜻으로 '시짱자치구(西藏自治區)'라고 부른다. 하지만 티베트는 원래부터 중국의 영토는 아니었으며, 어엿한 독립국가를 유지하고 있었다.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곳에서 티베트의 독립을 원하는 시위가 일어나는 것이며, 300만명이라는 적지 않은 이민족 사회를 한족(漢族) 정부가 힘으로 다스리다 보니 국제사회에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넓은 티베트 고원에서 제각각 부족을 이뤄 생활하던 티베트인들을 중국 당(唐)·송(宋)대 사람들은 '토번(吐蕃)'이라 불렀다. 그리고 청대 강희제때인 서기 1663년부터 '티베트족'으로 불리기 시작한다.티베트 민족이 하나로 통일된 것은 7세기초 33대 왕인 손챈감포(松贊幹布·581~649)가 부족들을 통합하면서다. 손챈감포는 분열된 티베트를 자신이 믿는 불교를 중심으로 다스리기를 원했고 불교는 이 시기부터 티베트 지역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최초의 통일국가가 형성된 후 당태종의 조카인 문성공주(文成公主)가 손챈감포 왕에게 시집오면서 종이 만드는 기술 등의 중국문화가 티베트에 전해졌고, 중국에는 티베트 불교가 전래된다. 9세기 중반 랑다르마 왕이 불교를 탄압하기 시작하며 갈등이 시작됐고 암살되고 난 후에는 봉건제후의 할거 등으로 내분이 일어나 400년 동안 티베트에는 혼란이 계속된다. 이로 인해 티베트는 13세기 몽고족의 지배를 받게 됐으며, 명(明)·청(淸) 시대에는 중국의 종주권 밑에 티베트 불교 지

  • '신비로운 제국' 그 역사의 궤적을 밟다

    '신비로운 제국' 그 역사의 궤적을 밟다 지면기사

    [경인일보=김종화기자]우리는 흔히 티베트 하면 '달라이 라마'를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이곳에 좀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원 지대에 위치해 있다는 것, 독립운동을 위한 망명정부가 인도에 있다는 것, 그리고 오체투지(五體投地·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가 땅에 닿도록 하는 큰 절)를 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것 등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아직도 베일에 가려진 그들의 문화는 우리에게 신비롭게 다가온다. 한국은 산업화의 바람을 타고 현대화에 성공했지만 전통을 지키기보다는 서구화돼 가고 있다. 반면 티베트인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정보화 시대에도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아쉬운 건 한국과 티베트는 아주 오래 전부터 불교를 매개로 문화적인 교류를 해 왔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그 뿌리를 거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경인일보 취재팀은 지난 1월 중순 티베트인들의 전통과 문화 속에 숨겨진 한국 고대 불교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이번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티베트 불교와 한국 불교의 뿌리를 찾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이와 함께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티베트의 역사와 티베트인들의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독자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