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원의 나라이며 영혼의 땅이라 불리는 티베트의 거대한 신들의 언덕 아래에서 라싸에서 체탕가는 길에 만난 유목민이 먼지 날리는 길을 헤치며 풀을 찾아 양떼를 몰고 지나가고 있다.

[경인일보=글┃김종화기자]아름다운 경관이 감동을 주는 설산(雪山), 그와는 또다른 느낌의 푸른 호수와 초원의 풍경, 휘황찬란한 고대 문화유적지들이 공존하는 지역 티베트.

히말라야 산맥 북서쪽에 자리잡은 티베트는 대략 1천만 년 전에 융기한 대고원으로 평균 해발이 4천m에 이르러 '세계의 지붕'이라 불린다. 총면적은 약 126만㎢로 중국 전영토의 13%에 해당될 정도로 광활한 곳이다. 하지만 티베트는 지리적 상황뿐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고립된 곳이라 특별한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찾아갈 엄두조차 내기 쉽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티베트를 서쪽의 보물창고라는 뜻으로 '시짱자치구(西藏自治區)'라고 부른다. 하지만 티베트는 원래부터 중국의 영토는 아니었으며, 어엿한 독립국가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곳에서 티베트의 독립을 원하는 시위가 일어나는 것이며, 300만명이라는 적지 않은 이민족 사회를 한족(漢族) 정부가 힘으로 다스리다 보니 국제사회에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넓은 티베트 고원에서 제각각 부족을 이뤄 생활하던 티베트인들을 중국 당(唐)·송(宋)대 사람들은 '토번(吐蕃)'이라 불렀다. 그리고 청대 강희제때인 서기 1663년부터 '티베트족'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티베트 민족이 하나로 통일된 것은 7세기초 33대 왕인 손챈감포(松贊幹布·581~649)가 부족들을 통합하면서다. 손챈감포는 분열된 티베트를 자신이 믿는 불교를 중심으로 다스리기를 원했고 불교는 이 시기부터 티베트 지역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최초의 통일국가가 형성된 후 당태종의 조카인 문성공주(文成公主)가 손챈감포 왕에게 시집오면서 종이 만드는 기술 등의 중국문화가 티베트에 전해졌고, 중국에는 티베트 불교가 전래된다.

9세기 중반 랑다르마 왕이 불교를 탄압하기 시작하며 갈등이 시작됐고 암살되고 난 후에는 봉건제후의 할거 등으로 내분이 일어나 400년 동안 티베트에는 혼란이 계속된다. 이로 인해 티베트는 13세기 몽고족의 지배를 받게 됐으며, 명(明)·청(淸) 시대에는 중국의 종주권 밑에 티베트 불교 지배자가 정치적 지배권도 함께 가졌다.


제2차 세계대전에 중립적 입장을 견지한 티베트는 독립정부를 구성하기도 했지만, 중국인민해방군에 의해 1950년 침공을 받게 돼 독립은 수포로 돌아간다. 중국은 티베트의 평화적인 해방이라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1951년 5월 23일 티베트와 17조협의를 체결해 강제 합병한 후 지금까지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중국은 그다지도 티베트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티베트가 희귀한 식물종과 야생동물, 천연자원의 보고이며 인도, 네팔, 부탄, 미얀마, 태국 등과 접해 있어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현재 티베트는 중국에 의한 광범위한 환경파괴로 많은 삼림이 사라지고 희귀 동·식물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티베트인들이 숭상하는 불교는 사람들에게 짐승을 죽이지 말고 모든 살아있는 것과 주위 환경에 자비심을 가질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중국의 침공은 이러한 티베트 사람들의 자연친화적인 태도를 짓밟아 버렸다. 이것이 우리가 티베트와 티베트 불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