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체 백거사 내에 있는 백거탑은 십만탑이라고도 부르며, 1414년 짓기 시작해 10년 만에 완성한 40여m의 거탑이다. 저 멀리 높은 언덕에 영국군의 침략에 저항했던 드종 요새가 보인다.

[경인일보=글┃김종화기자]티베트인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망명길에 오른 후 티베트를 이끌고 있는 판첸 라마가 머무르는 도시 시가체(日喀則). 시가체는 수도 라싸(拉薩)와 다른 차분한 모습이었다. 역대 판첸라마의 영탑이 모셔져 있는 타쉬룬포 사원에서도 라싸의 포탈라궁과 조캉사원과 같이 북적대는 모습보다는 평온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가체에서 하룻밤을 보낸 취재팀은 다음날 아침 마지막 방문지로 정한 티베트 중부지역 중심도시 장체(江孜)로 출발했다. 마지막 방문지로 장체를 찾는 것은 혼란했던 근대사 속에 치열한 삶을 살았던 티베트인들의 숨결을 느껴 보기 위해서다. 시가체에서 장체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차량으로 달리면 도착할 수 있다.

# 티베트 제3의 도시 장체

여느 티베트 도시와 같이 장체도 5천m에 이르는 고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고원 도시였다.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가 머무르는 도시는 아니지만, 장체는 에베레스트를 넘어 네팔로 가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도시다. 이런 까닭에 장체에도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을 상대로 한 시장이 발달해 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지역의 지하자원 개발에 관심을 갖고, 교통의 요충지인 장체 개발에도 공을 들여 인근 대도시인 시가체, 라싸와 아스팔트 도로로 연결해 놨다. 중국 정부의 이런 관심 때문일까. 취재팀이 점심을 먹기 위해 도착한 장체 번화가에는 중국 본토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과 상점이 많았다. 그리고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드물지만 힌두교인들도 눈에 띄었다.

▲ 다양한 신앙표현이 새겨진 백거사 뒤 바위산.

# 하얀 거탑, 백거사(白居寺)

장체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백거사'다. 우리는 백거사로 가기 위해 점심을 먹고 거리로 나섰다.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노점상이다.

한국처럼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노점상과 불교 용품을 파는 곳들이 섞여 있었다. 불교 용품을 파는 노점상에는 10대 판첸 라마의 사진을 팔기도 했는데, 중국 정부로부터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14대 달라이 라마의 사진은 정치적인 문제 때문인지 찾아 볼 수 없었다.

▲ 백거탑을 도는 순례자들.

10여분쯤 걸었을 때 웅장한 모습을 뽐내는 백거사가 나타났다. 백거사라는 이름은 중국인들이 하얀색의 큰 탑이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인데, 티베트인들은 '펠코르 최대 곰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펠코르 최대 곰파라는 이름은 장체 일대를 다스리던 랑다르마라는 왕의 아들 이름에서 연유됐다고 전해진다. 사원내로 들어서자 중국인들이 펠코르 최대 곰파를 하얀 거탑이 있는 사찰이라는 뜻의 백거사라고 붙인 이유가 쉽게 이해가 됐다.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십만불탑(쿰붐)' 때문이다. 십만불탑은 서기 1414년 원나라를 등에 업고 티베트 불교를 장악했던 샤카파가 10년간 100여만명의 인원을 동원해 쌓은 11층으로 된 40여m의 거탑이다. 이 탑에는 문이 108개나 되고 탑내의 벽화와 1만여개의 신상이 새겨져 있다. 현재 십만불탑의 일부 방이 순례객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 드종 요새 종산영웅 기념비.

# 영웅성(英雄城)이라 불리는 드종 요새

백거사를 둘러본 후 우리는 '드종 요새'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은 종산(宗山) 위에 세워진 옛 요새다. 한자로는 '종산포대(宗山砲臺)'라고 표기한다.

드종 요새는 장체 중심부의 높은 언덕에 있어 시내 어디에서도 쉽게 눈에 띄었다. 장체가 시가체와 라싸의 사이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과 군사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1268년 이 요새가 지어졌다. 드종 요새는 장체 일대에 지방 국가를 세운 팍파 펠장포가 1365년 현재의 규모로 확대했고, 한때는 이곳이 왕궁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대사에서 드종 요새는 영국군의 침략에 저항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1904년 영국의 영허즈번드 대령이 이끄는 1천150명의 병사와 1만명의 인부로 구성된 영국이 인도를 통해 티베트로 침략해 왔다. 티베트인들은 드종 요새에서 대포, 총 등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영국군을 상대로 활과 돌, 육탄방어로 2개월간 버텼지만 끝내 요새는 함락되고 만다. 많은 장체 시민들은 성벽 안에서 열악한 무기로 최후까지 저항하다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절벽으로 떨어져 죽음을 택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드종 요새를 '영웅성'이라고도 부른다.

▲ 다양한 물건을 파는 장체시내 상점들.


중국 정부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에 끝까지 저항한 티베트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현재 드종 요새를 복원중이다. 취재팀은 복원공사로 인해 드종 요새를 속속들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종산영웅기념탑에서 드종 요새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