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베트의 신성한 언덕에서 어김없이 만나는 타르쵸. 이 타르쵸가 바람에 날리는 소리를 일컬어 티베트에서는 '바람이 경전을 읽고 가는 소리'라고 말한다. 만년설로 덮인 해발 7천200m의 장엄한 카로라산을 배경으로 타르쵸가 펄럭이고 있다.

[경인일보=글┃김종화기자]취재팀은 그동안 라싸(拉薩)와 체탕(澤當)을 중심으로 티베트 문화의 시작과 불교에 대해서 둘러봤다. 윰부라캉(雍佈拉康)과 사뮈에 사원(桑耶寺院), 포탈라궁(布達拉宮), 조캉사원(大昭寺) 등 지금까지 여러 문화재를 둘러보며 현장에서 티베트인들을 지켜 봤지만, 사실 이런 곳에서는 그들의 삶을 피상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티베트가 한반도 면적의 약 6배(123만㎢)인 점을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방문한 지역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우리는 네팔, 인도와 접경한 티베트의 서쪽지역 문화를 살펴 보기로 하고, 서부지역의 중심 도시인 시가체(日喀則)로 향했다. 시가체는 티베트인들이 달라이 라마 못지않게 정신적인 지도자로 믿고 의지하는 '판첸라마(班禪額爾德尼)'가 머무르고 있는 도시다.

# 바람도 불경을 읽는 티베트

티베트 제2의 수도라고 불리기도 하는 시가체는 라싸에서 280여㎞ 떨어져 있다. 도로망이 좋지 않은 티베트에서 280여㎞라는 거리는 자칫 게으름을 피우면 하루 만에 도착하기 힘든 거리다. 시가체로 가는 길은 라싸강 상류를 따라 이동하다 네팔까지 연장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칭짱열차 공사 구간을 따라 가는 방법과, 해발 4천900m라고 알려져 있는 캄발라 고개를 넘어 암드록쵸 호수, 간체를 거쳐 가는 길 두가지로 나뉜다. 취재팀은 라싸강을 따라 이동하는 경우 빠를지 모르지만 티베트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암드록쵸 호수를 지나는 길을 선택했다.

▲ 티베트인들은 아직도 하늘로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바위에 하얀색 사다리를 그리며 표현하고 있다.

라싸 도심을 벗어나자 모든 집들의 지붕에 오색 천으로 만들어진 깃발이 꽂혀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이 깃발은 오색 천에 티베트 글로 경전을 쓴 '타르쵸'다. '타르쵸'는 깃발처럼 나뭇가지에 묶어 지붕마다 걸려 있었다. 또 양과 야크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초원을 찾아다니는 티베트인의 손에도 들려 있었고,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의 짐을 실어 나르는 경운기에도 걸려 있었다. 또 마을 어귀와 차량이 지나 다니는 고개 정상, 산 능선 등에도 어김없이 타르쵸가 걸려 휘날리고 있다. 취재팀이 라싸를 벗어나기 위해 오른 해발 4천900m의 캄발라 고개 정상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두고 간 타르쵸가 걸려 돌무지 주변에 걸려 있었다. 타르쵸를 자세히 보기 위해 캄발라 고개 정상에 차를 세우고 다가갔다. 타르쵸에는 손챈감포(松贊幹布) 왕이 만든 불경이 티베트 문자로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티베트인들은 타르쵸가 바람에 날리는 소리를 일컬어 '바람이 경전을 읽고 가는 소리'라고 한다. 그리고 타르쵸가 날리는 곳에서는 누구나 바람이 읽어 주는 경전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믿는다.

▲ '분노한 신들의 안식처'라 불리는 암드록쵸 호숫가에 영혼의 구원을 비는 동물의 머리뼈가 놓여 있다.

# '선녀의 호수'와 '하늘로 가는 사다리'

타르쵸가 휘날리는 캄발라 고개에서 서쪽을 바라보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호수가 눈에 들어 왔다. 전갈을 닮은 구불구불한 모양의 이 호수는 남쵸, 마나사로바와 함께 티베트의 3대 성호로 불리는 '암드록쵸 호수'다. 우리는 암드록쵸의 모습을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다시 차에 올랐다.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따라 암드록쵸에 가까이 가자 순례자들이 쌓아 놓은 돌무지와 바람에 휘날리는 타르쵸, 그 뒤로 만년설로 덮인 해발 7천200m의 카로라산이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펼쳐졌다.


'푸른 보석'과 '선녀의 호수'란 애칭을 갖고 있는 암드록쵸에는 이 호수를 지키던 여신이 티베트 최초의 왕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길이가 무려 180㎞에 이르는 암드록쵸 호수는 해발 4천480m에 위치해 있다.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바람마저 강하게 불어 오랫동안 머물기가 어려웠다. 취재팀은 암드록쵸 호수의 푸른 물빛을 감상한 후 다시 길을 재촉했다.

암드록쵸 호수에서 출발해 3시간 쯤 갔을 때 새로운 마을 어귀가 나타났다. 구불구불한 산언저리를 계속 달려오며 먼지를 많이 마신 탓에 우리는 잠시 차에서 내려 쉬기로 했다.

▲ 티베트 전통가옥의 실내. 소박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그곳엔 여느 티베트 마을과 마찬가지로 소원을 빌기 위해 쌓아 놓은 돌무지와 타르쵸가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위에 하얀색 페인트로 그려진 사다리 그림이었다. 사다리는 한 개만 있지 않았다. 10여개의 사다리가 하늘을 향해 그려져 있었다. 이 사다리 그림 속에는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티베트 사람들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오래전 신과 인간 세상을 이어주는 사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인간들은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사다리를 이용해 하늘로 올라가 신에게 질문을 했고 신들도 가끔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늘 사다리가 끊기고 말았다. 신들은 인간에게 많은 지식을 선물했지만 인간들은 하늘나라를 너무 소란스럽게 만들고, 지켜야 할 규칙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자연까지 파괴해 인간에게 분노한 신들은 하늘로 이어진 사다리를 거두어 들이고 말았다. 하지만 티베트인들은 아직도 하늘로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하얀색 사다리를 그리며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한쌍의 부부가 마차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티베트의 독특한 장례 풍습인 '조장'(鳥葬·송장을 들에 내다 놓아 새가 파먹게 하는 원시적인 장사)도 하늘로 가고 싶은 티베트인들의 간절한 마음에서 나온 풍습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갈 수는 없게 됐지만 육체가 새에 의해서 하늘로 운반된다고 믿고 있었다.

※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