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존 인물들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품들을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을 통해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는 배진호씨는 2009년 5월 아홉번째 개인전 '동행'을 인천에서 개최했다.
당시 작가는 거대한 두상을 제작해 이를 캐스팅하고 피부와 체모의 질감을 세밀한 터치로 표현했다.
자소상인 '공재선생 전상서'에서는 사실적 재현을 통한 현실감과 크기가 주는 비현실감이 공존한다. 작품은 실제와 같이 생생한 느낌으로 표현됐지만, 비대한 두상 조각들은 작가의 개인적 기억과 추억 속 인물로서 현재와 과거의 시간대를 함께 보여줬다. 이와 함께 일상에 동반되는 소품들인 비닐봉투, 신발, 손 등을 포함한 9점이 전시됐다.
전시회를 기획한 신세계갤러리 큐레이터는 "두상과 작가의 삶의 모습을 암시하는 비닐봉지, 신발, 손 등을 통해 배씨 개인적인 사색과 흔적들을 담아내고 있다"며 "작가 자신을 모델로 얼굴의 움직임, 수염까지 세세하게 표현한 대형 작품은 표현주의적이고 극적인 동시에 격정적인 특징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배씨는 2010년에 이어 올해 초 인천아트플랫폼 2011년 입주작가로 선정됐다. 유일한 재입주 작가이다.
2010년 아트플랫폼에서 배씨는 그 어느때보다 창작에 열중했다. '무게있는 작품'에 애정을 품고 있는 작가는 1년간 8점(소작 포함)을 창작했으며, 열번째 개인전도 개최했다.
230㎝ 크기 두상인 '공재선생 전상서'의 후속 시리즈 작품과 120㎝ 크기인 '편지'라는 대작을 내는 등 2010년 배씨는 예년보다 다작이자 대형작품들을 완성했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내년 초 전시회 준비를 위해 후속 작업에 한창인 배씨를 아트플랫폼 작업실에서 만났다. 작업실 입구에서부터 안에까지 대형 작품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업실 한편에 자리한 '공재선생 전상서'에 눈길을 주고는 배씨는 "쉽게 가면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는 생각이다"며 "때문에 가장 기본이면서도 가장 힘든 인체(얼굴)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배씨는 대학 졸업 후 현재까지 10여년간 얼굴에 집중했지만, 최근 검은 비닐봉지를 형상화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1961년에 태어났으니, 이제 나이가 50이에요. 공자께서 50이면 지천명이라고 했는데, 최근 저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됐다고 할까요. 얼굴을 더이상 잘 만들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 대신 담겨진 물건을 빼낸 후 버려진 비닐봉지를 큰 규모로 만들고 있다. 그는 버려진 봉지가 측은하고 초라해 우리네 인생사를 빼닮은 것 같아 세세한 구김 하나하나까지 그리듯 매만지려 한다.
배씨는 "비닐 봉지를 형상화한 첫 작품인 '동행2'(70㎝)는 물품이 담긴 봉지인데, 이번에 표현하려는 것은 빈 봉지여서 그만큼의 가벼운 질감을 표출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끝으로 "나는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드는 작가가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한다"며 "작업도구도 대형공구이며, 작업하는 동안 육체와 정신적 고통이 심하지만, 작품으로 보여주는 작가로 남겠다"고 말했다.

■작가소개
경남 거제 태생인 배진호(50)는 홍익대 미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 조각과를 졸업했다. 제16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우수상을 수상(1997년)했다. 한국미술의 자화상전(2002년), 부산비엔날레 조각 프로젝트(2004년), 공주국제미술제(2005년), 포천 아시아비엔날레(2007년), 중국 창춘 국제조각심포지엄(2010년) 등 단체전을 비롯해 2010년까지 열 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창작 활동을 펴고 있다.
/김영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