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팬들은 현재까지 경인지역 연고를 두고 활동했던 추억의 야구단 태평양 돌핀스를 기억하고 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경인지역 연고로 탄생한 삼미 슈퍼스타즈,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뿌리를 내린 청보 핀토스를 인수한 팀이 바로 태평양 돌핀스이기 때문이다. 1988년 3월8일 창단한 태평양 돌핀스는 같은해 10월 김성근 전 SK감독을 사령탑으로 영입해 1989년 정규리그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 준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삼성 라이온즈를 2승1패로 꺾고 경인지역 연고팀 사상 첫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경인지역 돌풍을 처음으로 일으킨 중심에 바로 유신고 야구의 상징 박정현이 있었다.
■장신 언더핸드 투수 박정현
194㎝의 장신에 60㎏대의 호리호리한 몸매의 소유자였던 박정현은 유신고를 졸업한 뒤 대학 진학을 깨고 1988년 태평양에 입단했다. 당시 신생팀이었던 유신고를 황금사자기 4강에 올려놓은 것 외에는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박정현이 야구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은 대학을 포기하고 프로에 진출했다는 것이 아닌 큰 키의 언더핸드 투수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박정현은 프로 데뷔 첫해 6경기(18과 3분의2이닝)에 나서 승리없이 1패에 방어율 7.71이라는 보잘것 없는 성적을 거뒀다.
박정현이라는 투수가 한국프로야구 30년사 속에 가장 강력한 언더핸드 투수로 자리잡은 것은 1988년 10월 부임한 김성근 감독의 지옥훈련을 거친 후다. 이때 김 감독의 지도로 박정현은 투구폼이 안정되면서 직구 구속이 140㎞대 초반까지 향상됐고 위력적인 싱커를 장착하게 된다.
이런 주무기를 통해 1989년 박정현은 총 38경기에 나서 19승10패 2세이브를 거뒀고 이중 17경기에서 완투를, 4경기에선 완봉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방어율도 2.15로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 중 2번째로 좋았다. 당시 전성기를 누렸던 선동열(현 KIA 감독)이 21승(3패)으로 다승을, 1.17로 방어율 부문에서 각각 1위에 올랐다.
그해 박정현은 경인지역 연고팀의 프랜차이즈 선수로는 처음으로 신인상을 받았다. 1992년까지 매년 두자릿수 승수를 올리며 전성기를 누렸던 박정현은 현대-쌍방울을 거쳐 SK에서 2000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253경기에 나서 65승54패21세이브 방어율 3.45를 기록했다.

■야신(野神) 김성근과 태평양 포수 김동기
추억의 투수 박정현을 만나기 위해 야구인들을 통해 수소문했지만 캐나다로 이민 간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에 박정현의 화려했던 전성기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투수로서 명성을 가질 수 있도록 조련한 김성근 감독에게 그에 대해 물어봤다. 김 감독은 "처음 봤을때 투수치고는 상당히 좋은 몸을 갖고 있었다. 예쁜 투구폼도 인상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박정현의 투구폼을 고쳤고 한시즌 동안 선발로 뛸 수 있는 체력을 만드는데 중점을 두고 지도했다"며 "볼을 하루에 200개 이상씩 던지게 한 것도 투수들의 투구폼과 제구력의 안정, 위력적인 구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당시 태평양의 주전 포수로 활약했던 김동기(사업)씨는 "김 감독님의 혹독한 조련 이후 투수들의 공이 위력적으로 바뀌었다"며 "당시 박정현은 최고 구속 142㎞의 빠른 직구와 140㎞ 전후로 구속이 형성되는 싱커로 상대 타자들을 농락했다"고 밝혔다.
/신창윤·김종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