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에서 남성 캐릭터가 3명이 나온다면, 여성 캐릭터는 1명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대중 역할마저도 여성은 17%에 불과하죠. 여자 아이들이 소년들과 함께 노는 모습도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할리우드 스타 지나 데이비스(56)는 10일 TV나 영화 같은 미디어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여성 소외를 꼬집었다.
10·11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여성미디어포럼에 ITU(국제전기통신연합) 특사 자격으로 참석 차 방한한 그는 이날 포럼 개회식 기조연설에서 "미디어가 여성들이 스테레오 타입의 역할에 갇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여성들이후일 전통적인 역할에 머무르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난 1982년 영화 '투씨'로 데뷔한 지나 데이비스는 여성, 특히 여아의 권익 신장을 위해 노력해왔다.

2004년에는 '지나 데이비스 미디어 연구소'를 세워 여성 관련 미디어 연구를 후원해오고 있으며, 2006년에는 드라마 '커맨더 인 치프'에서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역할을 맡아 제6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서 TV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올해 ITU의 정보통신기술(ICT) 여성특사로 임명됐다.
8년 전 연구소를 설립한 계기에 대해서 그는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특히 어린이 대상 미디어에서 여성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자료를 수집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두 살 난 딸과 TV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남성 캐릭터에 비해 여성 캐릭터들은 너무나 적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여성 캐릭터들은 스테레오 타입에 갇혀 있었습니다. 업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봐도 아무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더군요."
그가 세운 연구소는 어린이 대상 TV 프로그램을 분석하는 최대 규모의 연구를 후원하고 있다. 조사 결과가 전해주는 TV 속 여성 소외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최근의 연구를 보면 전문직이나 기술 분야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미국의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보면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서 남자가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주인공은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남성과 여성의 성비가 무려 15 대 1이었습니다."

TV에 등장하는 모든 분야의 여성 캐릭터를 통틀어도 지난 20년 동안 겨우 0.7% 증가하는 데 그쳤다는 설명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남녀의 균형이 맞춰지기까지는 무려 700년을 기다려야 하는 셈.
그는 "21세기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지만, 이러한 연구 결과를 보면 TV와 미디어에서는 여성들이 '세계의 절반'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디지털의 파도를 타는 여성들(Women with the wave)'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여성미디어포럼에서는 모두 8개의 세션을 통해 남녀 간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여성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미디어의 역할을 논의할 예정이다.
"'K드라마(한류드라마)'에서 발리우드 영화까지 여성의 역할 변화를 보여줘야 합니다. 온라인 영화든, SNS든 간에 어떤 모습을 보게 되면 이것을 믿게 되기 때문이지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