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서 열린 재판 주민 관심 20여명 방청객 참여
판사 "인천으로 법원 오가야하는 어려움 알겠다"
"백령도에 직접 와보니, 서해5도 주민들이 재판 한 번 받기가 얼마나 힘든지 몸소 느껴집니다."
지난 21일 오후 3시께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사무소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가롭던 섬 마을에서 벌어진 주민간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법정'이 차려진 것이다. 법복을 입은 판사가 나와 민사 사건에 대한 원고와 피고측의 주장을 경청했다.
이날 재판은 파산4단독 서창석 판사의 심리로 진행됐다.
이 사건은 3년 전 이곳 주민 A씨가 덤프트럭을 몰다 같은 동네 주민 B씨의 창고를 들이받으면서 시작됐다.
A씨는 부서진 창고를 새로 지어줬지만, 지난 3월 B씨는 "창고가 예전 모습과 다르고 물이 샌다"며 A씨를 상대로 341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서 판사는 재판을 위해 백령초등학교 인근 B씨의 창고를 찾아가 현장검증을 하고, 사건을 조정에 회부했다. 결국 A씨는 조정위원의 화해안을 받아들여 B씨에게 창고수리비 250만원을 주기로 했다.
서 판사는 이어서 열린 개인 파산선고 재판에서 주민 C씨에 대한 채무 면책을 허가했다.
이날 2건의 재판은 인천지법이 섬 마을 주민들을 위해 백령도 현지에 마련한 '찾아가는 법정'에서 진행됐다.
인천지법은 서해최북단 섬 백령도가 인천에서 뱃길로 4시간이 넘게 걸리는 등 지리적 제약이 있는 것을 감안, 이 곳을 방문해 찾아가는 법정을 연 것이다.
백령도 주민들은 길어야 30분 정도 걸리는 재판을 받기위해 2~3일 가량 인천에 머무르며 경제적, 시간적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B씨는 "백령도에서 인천에 있는 법원에 가려면 몇 시간 동안 배타고 나가서 하룻밤을 묵고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이렇게 법원이 직접 찾아와주니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백령도 주민들도 난생 처음 경험하는 재판에 관심을 보였다. 이날 면사무소 법정엔 주민 20여명이 방청객으로 찾아왔다.
주민 이형걸(80)씨는 "백령도에 살면서 오늘처럼 판사님이 직접 오셔서 재판을 여는 모습을 처음 본다"며 "재판받을 일이 없는 게 우선이지만, 법원이 이처럼 섬 사람들을 계속 배려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 판사는 "민사소액사건의 경우 원고나 피고 모두 변론을 위해서 최소 2번은 인천으로 나왔어야 하는 사건이었는데, 직접 와보니 얼마나 오가기 힘든지 알게 됐다"며 "서류와 사진으로만 판단해야 할 문제도 직접 현장에서 볼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백령도/김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