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백범 김구를 '인천의 인물'이라 하고, 누구는 백범이 인천에서 잠시 옥살이한 것뿐인데 인천과의 연관성을 뭐 그리 내세우느냐고 한다.
'백범'과 '인천'은 그렇게 어정쩡하게 지금껏 관계를 맺어 왔다. 김구는 '백범일지'(白凡逸志)에서 인천과의 관계를 명확히 하고 있다. 그는 '백범일지'에서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지대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김구가 1946년 38선 이남 지방 순회를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 인천이다. 그는 '치하포 사건'으로 1896년 21세 때 인천감리서 감옥에 수감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탈옥에 성공했다.
김구는 인천 감옥에서 신학문을 접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는 여기서 '대학' '세계역사·지리' '태서신사' 등의 신서적을 읽었으며, 감옥에 함께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인천 감옥 생활은 혈기 왕성한 애국 청년 김구에게 교육가·독립운동가로 성장할 수 있는 전환점이기도 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김구를 구명하고자 강화사람 김주경, 인천의 물상객주 박영문과 안호연 등이 애를 썼다. 김구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을 항상 간직했다.
김구는 1900년 김주경을 만나러 강화도에 갔으나 안타깝게도 김주경은 강화를 떠나 있었다. 김구는 김주경 소식을 기다리면서 강화도에서 약 3개월 동안 머물며 30여 명의 아이들을 가르쳤다. 39세 때는 또 다른 사건으로 인천 감옥에 이감돼 축항 공사 현장에서 노역을 했다.
수많은 출판사가 '백범일지'를 펴냈고, 이 책은 오랜 기간 스테디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백범은 여기에서 인천 감옥 탈옥 과정, 인천 동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담아 내고 있다.
김구는 인천을 중요하게 여겼건만, 인천은 김구의 발자취를 찾고 기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백범과 인천 연관성을 크게 보지 않는 사람은 '백범일지'를 다시 한 번 읽기를 권한다.
/목동훈기자
[책 읽는 인천, 문학속 인천을 찾다]仁川을 남다르게 생각한 '백범의 기록'
입력 2014-02-13 00:49
지면 아이콘
지면
ⓘ
2014-02-13 1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관련기사
-
[책 읽는 인천, 문학속 인천을 찾다·5]백범일지
2014-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