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신임 국정원장에 내정된 이병기 주일대사. /연합뉴스
신임 국정원장으로 내정된 이병기 주일대사는10일 취임 시 맡게 될 임무의 무게를 의식한 듯 '축하받을 일이 아닌 것 같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이 내정자는 이날 내정사실이 발표된 뒤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기자가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자 "축하는 무슨 축하냐"며 "어려운 곳에 가게 됐는데…"라고 말했다. 
 
이 대사는 내정 통보를 받은 시기와 관련, "오늘 아침에 받았다"고 전했다. 이 대사는 전날 저녁 관저에서 약 1개월 전 약속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의 만찬을 했다. 결과적으로 '송별 만찬'이 된 셈이었다. 
 
이 내정자는 이후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국정원장 업무와 관련된 질문에는 "인사청문회 절차도 있는 만큼 말할 입장이 아니다"며 언급을 자제했다. 

다만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며 "(국정원장) 임무를 맡게 된다면 냉철하게 동북아, 국제정세를 분석해서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나갈 수 있도록 더욱 크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1년간의 주일대사 업무를 회고하면서 "작년 연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만 아니었더라도 좀 더 시간을 앞당겨서 (한일 당국 간에) 협의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참배로 인해 노력이 조금 헛된 시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외교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 벽돌 쌓듯이 해서 궁극적으로는 (한일관계) 안정화라는 목표까지 가는 것"이라고 밝힌 뒤 "어차피 안정화까지는 간다"며 그때까지 양국간 간격을 좁히는 것이 한국 외교 당국이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주일대사관 직원들은 한국 신문들의 하마평에 이 대사가 자주 오른 만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내정 사실은 이날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접했다고 말했다. 

한 대사관 관계자는 "이 대사가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의욕적으로 일했던 만큼 개인적으로 아쉽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사관 직원은 "아쉽긴 하지만 한국에서 한일관계를 잘 아는 분이 대통령의 조언자 역할을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인사 청문회 준비 등을 위해 수일 내 귀국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미리 잡혀 있던 일본 학자와의 오찬 일정을 예정대로 소화한 이 대사는 이삿짐을 싸는 등 귀국 준비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 주일대사가 부임할 때까지 김원진 정무공사가 대사대리를 맡을 예정이다. 
 
한편, 일본 정부와 언론도 이 대사의 국정원장 내정에 큰 관심을 보였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 대사의 국정원장 내정에 대한 논평을 요청받자 "취임 이후 1년간 일한관계 발전을 위해 대단한 노력을 한 분"이라고 평가한 뒤 "새로운 직책에서 성공하기를 기원하고싶고, 앞으로도 일한관계를 위해 진력을 다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부임 이후 '카운터파트'인 일본 외무성 당국자들과의 통상적인 협의를 진행하는 한편 아베 총리의 최측근이자 정권의 실세 중 한 명인 스가 장관과 긴밀한 소통을 해왔다.

작년 12월26일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에 참배하기 직전, 스가 장관이 휴대전화로 이 대사에게 참배 예정 사실을 알린 일화가 있다. 
 
이와 함께 NHK는 "이 대사가 작년 6월에 대사로 부임한 이래,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강한 의욕을 보여왔기에 외교 관계자들로부터 (이 대사의 이임이) 일한관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 측근 인사로 분류되는 이 대사는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노태우 정부 시절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을 거쳐 김영삼 정부 시절 현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 2차장(당시 대북·해외담당)을 맡았다. 

기부 차장 시절 황장엽 망명 사건 등을 담당했다. 주일대사로는 지난해 6월4일 부임했다.  /도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