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로 곤경에 빠진 한국
국제적 진단 받을 줄이야…
위기가 일상화 된 현 시대
정부, 사전 예방·관리 위해서는
변화 예측과 대비 능력 키우고
국민도 위기관리 의식 높여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온 나라가 난리법석이다. 지난해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모든 국민이 큰 상처를 입었는데, 올해는 멀리 중동에서 온 바이러스로 20여명이 목숨을 잃는 등 위기를 겪고 있다.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참사는 처음부터 잘 대처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형 사고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항상 인재(人災)라는 말을 듣는다. 안전 관리를 잘못해서 사태가 커졌다는 것이다. 정부나 관리기관의 문제를 꼬집는 말이지만, 한편으로 안전의식 부재는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느낀다. 사람들이 많은 지하철역 계단이나 큰 도로의 횡단보도를 스마트폰을 보면서 걸어가는 사람들이나 어린이들을 볼 때마다 “저러다 사고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실 우리 국민들의 안전 의식이 그리 높지 않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앞만 보고 달려온 것과도 관련이 깊다.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 살면서 남보다 빨리 많은 것을 이루어야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위험은 무시해왔다. 성장이 가져오는 성과를 위해 안전 비용은 치러야할 대가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전보다는 ‘빨리빨리’를 더 중시했다. 또한 5천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침략을 당하면서 나라를 빼앗겨본 참담함까지 겪었고, 지금도 북한과 대립하는 삶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사건이나 사고에는 무덤덤해진 문화적 배경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안전 관리를 넘어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를 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안전이 현재 중심적이라면, 위기는 미래지향적이다. 현대에는 국제화, 지구온난화, 자연파괴, 기술의 발달로 예측불가능한 위기가 많아졌다. 지구 한곳에서 벌어진 일로 지구 전체가 순식간에 위기에 몰리는 세상이 되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라는 말은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다. 우리도 이미 서구의 금융위기가 발생시킨 국제 금융위기로 수차례 어려움을 당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의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그의 명저 <총, 균, 쇠>에서 무기, 병균, 금속이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를 서술했지만,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한국은 2002~2003년에 국제적으로 700여명의 사망자를 냈던 사스(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사태가 발생했을 때 피해가 거의 없어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사스예방 모범국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12년뒤 한국이 ‘중동 감기’로 심각한 곤경에 처해서 국제적인 진단과 처방을 받을 줄 누가 알았을까.

이제는 위기가 일상화된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위기관리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 정부 내에 위기관리 조직들이 만들어지고, 대학에서는 위기관리 학문이 발전하고 있다. 우리도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나 기업들이 위기관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초보 수준이다. 일본에서는 한국에서 메르스 사태가 벌어진 원인을 ‘위기관리 부재’로 지적하기도 한다. 위기관리는 미래 예측 능력이다. 위기는 변화에서 나온다. 변화에 빨리 적응하면 흥하고, 늦으면 망한다는 것이 역사의 진리다. 철기, 총포 등 선진문화를 빨리 습득한 민족은 발전했고, 그렇지 못한 민족은 망했다. 현대도 마찬가지다. 위기를 사전에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면 변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위기관리는 정부 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위기관리 의식이 높아질 때 우리 사회에 위기관리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 고령화 시대, 만성화된 실업시대를 맞아 일반인들도 전에 없던 위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언제 실업자가 될지 모른다. 안전한 노후와 3모작 인생시대에 대비해서 미리 준비하는 것도 뛰어난 위기관리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오대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