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회갑을 맞는 이해학(60)목사.
서울 철거민들의 이주지였던 성남에 지난 73년 12명의 교인과 함께 교회를 세운 30살의 혈기왕성한 청년 전도사가 어느덧 반백의 노인이 됐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입가의 깊게 팬 주름이 세월의 무상함을 그대로 보여줬지만 지난 30년 이 목사가 벌여온 민주화투쟁과 사회운동은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74년 유신헌법철폐 성명발표로 구속, 76년 3·1민주구국선언문사건으로 구속, 87년 4·13호헌철폐 및 군부독재종식을 위한 단식투쟁, 90년 8·15범민족대회 집행위원장 선출과 구속 등 이 목사는 민주화투쟁의 대가로 엄청난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 목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옥고를 치를 때마다 신자가 줄었지요. '빨갱이 목사'를 따른다는 이유로 취업은커녕 다니던 직장에서도 쫓겨났어요. 그래선지 감옥에만 다녀오면 신자들이 줄더군요. 그리고 나중에는 빼앗길 것 없고 갈 곳 없는 가난한 이들만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 목사 곁에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 신자들이 그림자처럼 함께하고 있다.
물론 이 목사가 지난 30년간 민주화운동에만 정신이 팔려 갈 곳 없고 소외된 이들을 등한시했던 것은 아니다. 30년째 교회신자인 한방병원장의 도움으로 의료선교활동을 벌이고 있고 도시빈민들을 위한 생계자금 대출지원을 위해 79년에는 주민신용협동조합을, 93년에는 주민생활협동조합을 세웠다.
또 국내에 들어와 열악한 환경속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김해성 목사와 함께 9년째 수정구 태평동에서 외국인노동자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운동권 출신에게는 '정신적 지주'로, 도시의 역사가 짧은 성남에서는 믿고 따를 수 있는 지역의 '원로'로 이 목사는 시민들의 존경의 대상이다.
3·1절인 지난 1일 이 목사는 주민교회 창립 30주년을 맞아 성남시민회관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김근태 국회의원과 허운나 민주당 분당갑지구당위원장 등이 참석,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때 빨갱이 목사로 몰려 3차례나 옥고를 치른 이 목사에게는 감회가 새로운 일들이다.
“지난달 25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행사에 참석했죠. 80년대 운동권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더군요.”
대선 전 노무현 후보를 공개지지했던 이 목사는 이제 자신은 “조용히 더 낮고 더 약한 이들을 위해 온힘을 쏟겠다”면서 “남아있는 통일 문제에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