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화운동의 앞자리에 서온 이해학목사가 이제는 남북통일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조용하게 더 낮고 더 약한 이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습니다.”

올해 회갑을 맞는 이해학(60)목사.
서울 철거민들의 이주지였던 성남에 지난 73년 12명의 교인과 함께 교회를 세운 30살의 혈기왕성한 청년 전도사가 어느덧 반백의 노인이 됐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입가의 깊게 팬 주름이 세월의 무상함을 그대로 보여줬지만 지난 30년 이 목사가 벌여온 민주화투쟁과 사회운동은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74년 유신헌법철폐 성명발표로 구속, 76년 3·1민주구국선언문사건으로 구속, 87년 4·13호헌철폐 및 군부독재종식을 위한 단식투쟁, 90년 8·15범민족대회 집행위원장 선출과 구속 등 이 목사는 민주화투쟁의 대가로 엄청난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 목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옥고를 치를 때마다 신자가 줄었지요. '빨갱이 목사'를 따른다는 이유로 취업은커녕 다니던 직장에서도 쫓겨났어요. 그래선지 감옥에만 다녀오면 신자들이 줄더군요. 그리고 나중에는 빼앗길 것 없고 갈 곳 없는 가난한 이들만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 목사 곁에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 신자들이 그림자처럼 함께하고 있다.

물론 이 목사가 지난 30년간 민주화운동에만 정신이 팔려 갈 곳 없고 소외된 이들을 등한시했던 것은 아니다. 30년째 교회신자인 한방병원장의 도움으로 의료선교활동을 벌이고 있고 도시빈민들을 위한 생계자금 대출지원을 위해 79년에는 주민신용협동조합을, 93년에는 주민생활협동조합을 세웠다.
또 국내에 들어와 열악한 환경속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김해성 목사와 함께 9년째 수정구 태평동에서 외국인노동자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운동권 출신에게는 '정신적 지주'로, 도시의 역사가 짧은 성남에서는 믿고 따를 수 있는 지역의 '원로'로 이 목사는 시민들의 존경의 대상이다.

3·1절인 지난 1일 이 목사는 주민교회 창립 30주년을 맞아 성남시민회관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김근태 국회의원과 허운나 민주당 분당갑지구당위원장 등이 참석,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때 빨갱이 목사로 몰려 3차례나 옥고를 치른 이 목사에게는 감회가 새로운 일들이다.

“지난달 25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행사에 참석했죠. 80년대 운동권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더군요.”

대선 전 노무현 후보를 공개지지했던 이 목사는 이제 자신은 “조용히 더 낮고 더 약한 이들을 위해 온힘을 쏟겠다”면서 “남아있는 통일 문제에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