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국정화란 블랙홀이 모든 정치현안을 빨아들이고 있다. 청와대 5자 회동 이후 여야 관계는 더욱 경색되고 있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예산과 법안 심사를 위해 내년도 총선 선거구획정안의 제출시한을 넘긴 것은 물론 선거구획정의 법정시한도 넘길 공산이 커 보인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오늘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거쳐 28일부터 활동에 들어가고, 내달 9일부터는 소위원회가 가동된다. 소위원회의 감액 증액 심사에 이어 30일까지 예결위 전체회의를 통과시킨 뒤 법정시한인 12월 2일 본회의에서 통과돼야 한다. 야당이 교과서 국정화를 예산심사 및 법안심의와 연계시키려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여론의 역풍을 의식해서 의정활동은 일정대로 진행한다니 다행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4대 구조개혁 및 경제활성화 법안과 한중 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 예산안 등에 대해 야당이 쉽사리 협조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해서 국회에 제출하면서 예산안에 대한 설명과 함께 국회에 협조를 당부하는 절차다. 문제는 정국대치가 청와대 5자회동 이후에도 풀리지 않는 소이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려 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예산안은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12월 1일에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기 때문에 헌법이 정한 시한내에 통과된다 하더라도 현재 여야의 대치 정국이 장기화하면 졸속·부실 심사를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는 국민의 여론이 찬반으로 갈려있으나 반대 여론이 증가하는 추세다. 게다가 새누리당에서도 수도권지역 출신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인식변화가 보이지 않으면 4대 구조개혁 및 경제활성화법안은 물론 심도있는 예산안 심사도 어려울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주목받는 이유다.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에게 의정활동에 협조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교과서 국정화 고시로 여야 대치가 극단으로 치닫고 민생의 발목을 잡는다면 1차적인 책임은 여권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