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부-아들-손자 '역장' 배치 특징
당대 석조미술 걸작 가장 잘 보존
주자성리학을 기본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사대부는, 명당을 택하여 선조를 모시고 조상의 묘역을 장엄하게 꾸며 음덕에 보답코자 하였다. 따라서 사대부 묘역의 각종 석조미술품은 조선시대에 독자적으로 발전하였고 그 내용도 다채로웠다.
한편, 예로부터 도성을 중심으로 20리 밖에 능묘를 쓰도록 법으로 규정했고, 당시 집권세력들은 경기지역에 세거하였다. 이런 까닭에 경기지역에는 사대부의 묘가 대거 자리하고 있다. 경기도박물관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경기지역에 학술적 가치를 지닌 사대부 묘가 400여 기 분포하고 있다.
특히 신도비의 경우, 전국 신도비의 70% 정도가 경기도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경기도의 사대부 묘 중에서 군계일학, '꽃 중의 꽃'은 군포 속달동에 위치한 '정난종 선생묘 및 신도비외 묘역 일원'(경기도기념물 제115호)이다.
이 묘역에는 1467년 황해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에 공을 세워 호조참판에 오른 정난종(鄭蘭宗, 1433~1489), 전라도 순찰사가 되어 삼포왜란을 수습하고 병조판서에 오른 그의 둘째 아들 정광필(鄭光弼, 1462~1538), 정난종의 장남 정광보(鄭光輔, 1457∼1524)와 손자 정복겸(鄭福謙, 1501~1552) 등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군포 속달동의 견불산 능선 중앙에 정난종 선생의 묘가 있고, 그 위로 장남인 광보, 차남인 광필의 묘가 차례로 있다. 모두 부인과의 합장묘이고, 봉분이 2개인 쌍분 형태이다. 묘역에는 묘표 6기, 묘갈(墓碣) 1기, 신도비 2기, 장명등(長明燈) 4기, 문인석(文人石) 8기, 망주석(望柱石) 4기, 상석(床石) 4기, 향로석 4기, 동자석 4기, 묘소 6기 등이 있다.
우리나라 100대 명당에 포함되어 풍수지리학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구릉 아래로부터 할아버지-아들-손자 순으로 묘소가 역장(逆葬)으로 배치되어 주목된다. 동래정씨는 조선 초기부터 구한말의 시기까지 고관대작을 끊임없이 배출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명문벌열(名門閥閱) 가운데 하나였다.
동래정씨로 조선시대에 정승의 자리에 오른 인물만 17명에 달하는데, 이는 전주이씨의 22명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정승을 배출한 가문에 해당된다.
이렇듯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벌족의 묘역인 만큼, 그곳의 석물들은 당대의 석조미술을 대표하는 걸작들이고, 그 원형도 우리나라 묘역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조선시대 사대부 무덤을 구성하는 신도비, 묘갈, 묘표, 장명등, 문인석, 동자석, 향로석 등이 한곳에 모여 있어, 조선시대의 묘제와 양식을 비롯하여 미술사·복식사·금석문 등을 제대로 느끼고 공부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문화재청 산하기구인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기증된 '군포동래정씨동래군파종택 (軍浦東來鄭氏東來君派宗宅,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5호)'이 묘역 가까이에 있어, 조선시대 양반가옥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
아울러 도심에서 가까우면서도 수리산 산자락의 한적한 곳에 자리하여 주말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화창한 날 역사탐방을 겸한 나들이를 권한다. 다만 문화재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는 법'.
사전 기본 지식을 갖고 답사에 임하길 바란다. 적절한 교재로는 '경기묘제석조미술'과 '경기묘제석조미술의 연구현황과 과제'를 권한다. 경기도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원문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