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 주변이나 산에 오르다 보면 많은 나무들 가운데 크고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유난히 눈에 띄는 나무가 있다. 우리가 흔히 엄나무라고도 부르는 음나무다. 지역에 따라 개두릅나무, 멍구나무, 엉개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릅나뭇과의 낙엽활엽교목인 음나무는 높이 25m, 직경 1m까지 자라며 잎은 단풍나무잎처럼 5∼9개로 깊게 갈라진다. 황록색 꽃은 8월에 피는데 꿀이 많아서 벌과 나비가 모여 들어 기능성 꿀을 생산할 수 있는 밀원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매우 높다. 음나무는 물기가 약간 있고 토심이 깊은 곳과 계곡 근처를 좋아하며 어려서는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지만 클수록 약한 햇빛을 좋아한다. 음나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가시는 어릴 때 나무 전체에 덮여 있다가 줄기의 지름이 한 뼘쯤 굵어지고 키가 십여 미터쯤 자라게 되면 아래쪽의 수피부터 차츰 회흑색으로 짙어져 가며 거의 사라져 없어진다. 가시는 맛이 좋은 음나무 어린 순을 노리는 들짐승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생존의 수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음나무는 액운을 막아주고 만복이 깃들게 하는 길상목으로, 성황림의 신목으로 우리 민족과 함께 해왔다. 위협적인 가시 때문에 귀신이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 하여 옛날 사람들은 대문 옆이나 마을 어귀에 음나무를 수문장처럼 심었다. 정월대보름에 병마와 잡귀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음나무 가지를 잘라다가 문설주위에 가로로 걸어두는 풍습도 전해지고 있다. 음나무를 깎아 '음'이라고 하는 육각형 노리개를 만들어 잡귀가 범접하지 못하게 아기 옆구리에 채워주기도 했다.
봄이면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돋우는 두릅나무 새순은 참두릅, 음나무 새순은 개두릅이라고 한다. 개두릅이라고 하여 참두릅보다 결코 맛이나 향이 뒤떨어지지 않는다. 대개 4월 하순에서 5월 초 가시가 갈색에서 녹색으로 변하면 곧 음나무 새순이 돋는데 잎이 완전히 피기 전의 새순은 쌉싸래한 맛과 독특한 향으로 봄철 산나물의 귀족으로 불리고 있으며 식도락가들은 개두릅을 먹어야 제대로 봄맞이를 했다고 한다. 특히 음나무순은 인삼의 주요성분인 사포닌과 루틴 등 기능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맛뿐만 아니라 영양적 측면에서도 가히 웰빙시대의 대표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음나무순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부치거나 튀겨서 먹고 김치를 담그기도 하며 삶아서 말리거나 간장에 절여서 저장하기도 한다. 가지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닭이나 오리와 함께 백숙요리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한방에서는 음나무 껍질을 해동피라 부르며 피부병, 관절염 치료에 처방했고, 약리 실험에서 중추신경을 진정시키는 작용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음나무는 재질이 좋아 목재로도 다양하게 이용되어 왔다. 나뭇결이 아름답고 목재의 강도도 적당한데다 가공하기 쉬워 가구재로 선호되었고 습기를 잘 흡수하지 않는 성질이 있어 나막신과 스님들이 지니고 다녔던 나무그릇인 발우를 만드는데도 사용되어왔다.
/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