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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
무협소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가. 스토리와 작품배경 등만 보면 오랜 연륜을 가진 장르로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놀랍게도 무협소설은 풋풋한 현대소설(!)이다.

중국에서 무협소설이란 말은 1915년 린수(林)의 단편소설 '부미사(傅史)'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대중적 영향력과 인지도 또 장르 문법의 모형을 제시한 첫 번째 작품은 평강불초생의 '강호기협전'(1923)이다. '강호기협전'은 '홍잡지'에 매주 1회씩 절찬리에 연재됐고, '불타는 홍련사'(1928)란 이름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평강불초생의 본명은 샹카이란(向愷然·1889∼1957), 평강성에 사는 불초소생이란 뜻이다. 원세개의 집권에 반대하는 혁명운동에 가담했다 실패하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유학 중 할아버지의 부음을 들었으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하여 평강불초생을 자신의 필명으로 삼았다. 그는 무술의 고수이기도 했으며, 후일 안휘대학 교수와 정부기관의 고위직을 역임했다.

'강호기협전'은 일찌감치 국내에도 소개된다. 한글학자 주시경의 제자로 국어학자였던 박건병(1892~1932)이 맹천이란 필명으로 '동아일보'에 60회(1931. 9. 3~11. 19)에 걸쳐 번역, 연재한 것이다.

그러나 '강호기협전'은 중국만큼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완역되지도 못했고, 박건병 선생 또한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동하다 1932년 1월 10일 암살을 피하지 못하고 순국했다. 김광주의 '정협지'(1961)가 출현할 때까지 한국문학사에서 무협은 아예 없는 장르였다.

무협소설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박진감 넘치는 무공대결이 펼쳐지는 홍콩의 액션영화나 어두컴컴한 대본소에서 빌려 보던 무협지를 연상하는 것이겠으나 중국에서는 20세기 중국문학이 거둔 성과로 평가하는 연구서들이 적지 않고, 북경대 중문과 왕이추인 교수는 무협소설가 진융(金庸)을 루쉰(魯迅) · 바진(巴金) · 선충원(沈從文)과 함께 20세기 중국의 대표작가로 꼽는다.

무협소설은 역사도 깊고, 콘텐츠도 무궁하다. '사기'의 '자객열전'과 '유협열전'을 비롯해서 사대기서인 '수호지'와 '중드'로 유명했던 '판관 포청천'의 원작 '삼협오의'(1879) 같은 협의소설들이 무협의 문학적 기원을 이룬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였던 김현(1942~1990) 교수는 평론 '무협소설은 왜 읽히는가―허무주의의 부정적 표출'(1969)을 통해서 무협소설을 급변하는 사회질서와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중산층의 불안과 초조 그리고 도피주의를 반영하는 장르로 진단한 바 있다.

그러면 지금 무협소설이 널리 읽히지 않는 것은 재미가 없어서인가, 우리사회가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필요치 않을 만큼 맑고 정의로워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현실세계가 무협의 세계보다 더 황당하고 재미있어서인가. 많이 읽히는 것 못지않게 널리 읽히지 않는 것 또한 똑같이 문제적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