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학 화백은 1961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965년 '소년조선일보'에 '휴전선의 왕꼬마'를 발표하면서 만화계에 입문했다. 이재학은 1980년 전후 무협만화로 일약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1996년 숙환으로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생애 대부분을 그는 무협만화와 함께했다.
이재학의 무협만화는 크게 2기로 나뉜다. 제1기는 무룡(武龍)이란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기의 작품들이다. 무룡은 무술의 고수이면서도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서민적인 캐릭터였다. 주로 기격무협(技擊武俠) 장르의 만화들이었고, 쿵푸와 같이 맨몸으로 무공을 펼치는 무협 리얼리즘을 추구했다.
제2기는 추공(秋空)―'텅 빈 가을'이란 시적 이름을 가진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시대이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홀로 강호를 떠도는 추공은 독자들로 하여금 삶의 비애와 짙은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는 인물이다. 추공이 등장하는 만화는 비검법술(飛劍法術)과 현공변화(玄功變化) 같은 신비의 무공이 펼쳐지는 신마검협(神魔劍俠) 장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의 세계와 갈등하거나 아버지와의 화해가 작품의 중핵(kernel)을 이루는 아비 부재의 서사 곧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무협이 제2기 이재학 만화의 핵심이다. 가혹한 운명과 절대고독 앞에 굴하지 않는 추공의 냉철한 태도와 감정의 절제는 가족을 위해 일터로 나가 세파와 맞서는 외로운 현대 남성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이재학의 만화는 일본과 대만 등 해외까지 진출한 원조 무협 한류였는바, 1997년 그의 신마검협 '용음봉명'이 일본을 대표하는 출판사 고단샤(講談社)의 잡지 '애프터눈'에 절찬리에 연재되기도 하였다.
이재학 무협은 온갖 불의와 부조리 같은 사회적 갈등의 만화적 해결이고 권선징악은 드라마트루기에 지나지 않지만, 여성들 못지않게 남성들의 삶도 팍팍하고 불만족스럽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위안의 서사였다. 삶을 버텨내는 방법으로 술과 담배만 있는 게 아니다. 무협소설이 있고, 이재학의 무협만화가 있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