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끝에 오직 한 번 화사하게 꽃이 피는 대나무처럼 // 꽃이 가면 깨끗이 눈 감는 대나무처럼 // 텅 빈 가슴에 그토록 멀리 그대 세워놓고 바람에 부서지는 시간의 모래톱 // 벼랑 끝에서 모두 날려버려도 곧은 길 한 마음 단 한 번 눈부시게 꽃피는 대나무처럼
김후란(1934~)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언제나 변화하지 않는 절개와 정조의 식물, 대나무가 있다. 푸르고 곧은 대나무의 형상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인간의 마음을 비유하기에 충분하다. 대나무가 피어올린 꽃은, 생애 한번 보기 힘들 정도로 희귀하면서 개화 시기도 알 수도 없다. 그러나 대나무가 꽃을 피우고 나면 죽고야 만다는 속설과 같이 그 꽃은 대나무의 마지막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생애 끝에 오직 한 번/화사하게 꽃이 피는/대나무"에서 인간의 가치를 자연의 숭고한 것에서 발견하려고 한다. "꽃이 가면 깨끗이 눈 감는/대나무"는 "텅 빈 가슴에/그토록 멀리 그대 세워놓고/바람에 부서지는 시간"과 "벼랑 끝에서 모두 날려버려도 곧은 길 한 마음" 온갖 비바람을 서서 맞이하며 숙명적으로 한 사람을 기다리는 대나무에게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가 배워야 할 '마음의 길'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