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간 라운딩 위해 만든 컬러공 폭발적 반응에 이모티콘·선수 캐리커쳐공까지 확대
국내산=저가 이미지 깨기위해 기술력·공격적 마케팅 집중 시장점유율 5배 성장시켜
IMF때 직장 잃었지만 좋아하는 골프로 재기… 국내 1위 탈환·세계 톱3 브랜드 목표

우리나라 골프 선수가 국산 골프채와 골프공을 사용해 우승하는 장면을 전 세계인이 지켜봤다면 우리나라 골프업계의 이미지가 한 단계 상승했을 것이다. 문경안 (주)볼빅 대표이사 회장은 늘 이런 꿈을 꾸며 현재 국내외 골프선수 수 십 명을 후원하고 있다.
'볼빅(volvik)'은 우리나라 대표 골프공 생산업체다. 철강 유통사업으로 성공한 문회장은 지난 2009년 다 쓰러져가던 볼빅을 인수해 연 매출 300억 원, 업계 2위의 골프공 생산업체로 탈바꿈 시켰다. 업계 1위는 외국산 브랜드이기 때문에 골프공 하나만 따진다면 국산 골프공 생산 기업으로는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컬러공 하나로 골프업계를 평정하다
"아마 시기적으로 이 맘때 쯤이었을거예요. 한 여름에 동료들과 야간 라운딩에 나갔는데, 볼이 잘 보이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아 이거 야광볼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사무실로 돌아와 회사 연구원들한테 당장 야광공을 만들어보라고 지시했어요. 그런데 야광공은 빛 반사가 심해 만들어도 활용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형광공'으로 아이템을 바꿨죠." 문 회장의 이런 아이디어 덕에 연두색의 형광공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골프장에 형광공을 갖다주고 공짜로 쳐보라고 했어요.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이후 다양한 색깔의 컬러공이 만들어지게 된 겁니다."
기존에 컬러공에 대한 이미지는 한 겨울에 치는 '빨간 공' 그것 뿐이었다. 눈 위에 흰색 공이 떨어질 경우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기존에 흰색 공에 페인트로 빨갛게 칠한 공이 유일하게 유통됐던 것이다.
그런데 페인트로 칠한 빨간 공은 골프장에서 몇 홀 돌다 보면 금세 칠이 벗겨지는 단점이 있었다. 볼빅에서 만드는 골프 공은 아예 처음부터 플라스틱 수지에 염료를 넣어 칠이 벗겨지지 않게 고안됐다.
"그동안 골프 치는 사람들에게 컬러공은 편견이 있었어요. 흰색 공에 비해 비거리가 안 나간다는 것이지요. 수차례의 실험을 반복한 결과 컬러공도 흰색 볼과 똑같은 비거리, 아니 오히려 더 많이 나갈 수 있게 만들었어요. 우리가 만든 컬러공을 일선 골프장에 써보라고 무상으로 줬습니다. 그랬더니 차츰 편견이 깨지기 시작했어요. 골퍼 4명이 모두 흰색공으로 치다가 자신들의 공을 헷갈려 남의 것을 치기도 하고, 실제 프로경기에서도 이런 실수 때문에 벌타를 받는 일이 생기거든요. 그리고 깜빡하면 햇빛에 반사돼 공이 어디로 갔는지 찾기도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는데, 우리 제품을 쓰면 이런 문제가 다 해결돼요. 특히 요즘엔 여성 골퍼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여성분들은 소위 '깔맞춤'을 좋아하거든요. 그날 골프 복장에 따라 공의 색깔까지 맞출 수 있는 거예요."
문 회장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들어 맞았다. 컬러공의 엄청난 매출 신장에 힘입어 볼빅은 연두색은 물론 빨강, 파랑, 노랑, 초록색 볼, 심지어 만화 캐릭터, 이모티콘, 유명 골프선수들의 캐리커처가 들어간 골프공까지 생산하고 있다. 컬러공의 성공 덕에 기존의 흰색 공에 대한 매출도 훨씬 늘었다.
더구나 볼빅은 '국내산=저가'라는 이미지를 깨기 위해 기존의 저가제품 수출을 중단하고 기술력에 집중, 단가를 오히려 올린 후에 수출을 재개하는 역발상 마케팅에도 성공했다. 그 결과 문회장은 회사 인수 1년 만에 시장점유율을 5배나 성장시켰다.
"기술력에 투자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 것도 시장에서 한 몫 했다고 봅니다. 국산 골프공은 그 품질에 비해 인지도가 매우 낮았거든요. KLPGA 투어에서 선수들에게 볼빅 골프공으로 우승하면 1억원의 보너스를 주겠다고 했더니 인지도 상승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품질에 대해 그만큼 자신이 있었거든요."

#IMF 때문에 실업자 되고 골프가 좋아서 시작한 사업
사실 문 회장은 원래 잘나가던 상사맨이었다. 20여 년 간 유통업계에서 크고 작은 업무를 맡아 불철주야 일했지만, IMF를 비껴가기는 힘들었다. 결국 40대 초반에 회사를 그만두니 남는 것은 퇴직금 5천만원밖에 없었다. 흔한 커피숍 하나 차리기 힘든 금액이었다.
결국 비슷한 시기에 퇴사한 동료 한 명과 퇴직금을 모아 1억원의 자본금으로 'BM스틸'이라는 철강 유통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곧 기회가 찾아왔다. 굵직한 철강회사들의 연쇄부도로 현찰을 주면 철근 자재를 싸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기회를 잘 살려 기존의 인맥을 활용, 적극적으로 세일즈에 나섰고 사업 규모는 금세 커졌다. 그리고 그 성공을 바탕으로 다른 사업에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볼빅 인수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제가 골프를 워낙 좋아합니다. 업무 때문에 30대에 배우기 시작했는데, 처음 골프 배울 때 3명의 코치에게 하루 5시간씩 배우고 그렇게 8개월을 연습했어요. 필드에 나간 지 채 20번이 안됐는데 싱글 핸디캡을 하기에 이르렀죠. 덕분에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도 하고(68타), 골프 사업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된 거죠. "
그는 경영 초기 볼빅에서 나름 잘 만든 '비스무스 (BISMUTH)'라는 볼이 골퍼들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골프공에 들어가는 원료와 설계를 모두 바꿨다. 그리고는 만족스러운 골프공이 탄생하자 가격을 대폭 올렸다.
"처음 회사를 인수할 때 주변 사람들이 전부 연구·개발만 한국에서 하고 생산공장은 중국에 차려야 한다고 조언했어요. 그런데 저는 반대했어요. 그렇게 하면 기존의 직원들이 다 해고되기 때문이죠. 우리가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제값 받고 팔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현재 우리 제품은 충북 음성에서 전부 생산되는데, 나름대로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노력한 결과 이제는 국내외 골퍼들이 볼빅 제품의 퀄리티를 인정하고 있어요. 국내 점유율 2위, 세계적으로는 7위 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내 1위 탈환을 위해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골프공 생산을 넘어 토털 스포츠브랜드로 도전
'볼빅(Volvik)'은 날치자리를 의미하는 볼랜스(Volans), 승리를 뜻하는 빅토리(Victory), 그리고 코리아(Korea)의 합성어다.
골프공이 바다에 사는 날치처럼 힘 있고 정확하게 날아가 승리하는 게임, 대한민국 최고의 게임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볼빅은 세계 최고의 성능을 갖춘 골프공을 목표로 1989년 연구소를 설립하고 1997년부터 볼빅이라는 브랜드로 영업을 시작했다.
"볼빅 골프공은 '외유내강'(겉이 부드럽고 안이 딱딱함)형의 독보적 특허기술을 가지고 있어, '외강내유'형이 대다수인 타 브랜드와는 타구감과 비거리에서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꾸준한 기술개발로 세계 톱3 브랜드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토털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시킬 계획입니다. 골프공으로 시작해 모자, 장갑, 골프백, 클럽(골프채)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주니어 클럽은 이제 막 론칭을 했고, 내년에 성인 클럽과 골프웨어도 본격적으로 출시됩니다. 한국이 세계적인 스포츠강국인데 한국을 대표할 만한 자국 스포츠 브랜드가 하나 없는 현실입니다. 글로벌 브랜드인 아디다스와 나이키가 한 종목으로 시작했다가 토털 브랜드로 성장했듯이 볼빅도 골프를 통한 토털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하는 게 최종목표입니다."
문 회장의 이런 야심 찬 계획은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것 같아 보인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무엇보다 골프 자체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 문경안 (주)볼빅 대표이사 회장
- 1958년 5월 9일 경북 김천출생
- 건양대 세무학과 졸업
- 홍익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졸업(석사)
- 1977년(주)선경 입사
- 1987년 건영통상
- 1998년 BM스틸 설립
- 2009년 볼빅 회장
- 2010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공로상
- 2011년 스포츠산업대상 대통령상 수상
글/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