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전광판電光板에 문자 뉴스 몇 줄 떠오르며 스쳐 간다. 겨울 전선戰線 급속히 남하 중, 지나가던 허수아비들이 일제히 멈춰 서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오세영(1942~)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하늘은 하나의 채널이지만 무한한 용량과 크기를 알 수 없는 스크린을 가졌다. 태초부터 한 번도 꺼진 적 없는 '하늘 화면'은 수없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하늘이 보여주는 그것은 고개 들어 보는 자의 몫이며, 그것을 헤아릴 줄 아는 자의 것이 된다. 철새들이 날아오는 겨울 이맘 때 즈음, 기러기들의 행렬은 '하늘 전광판電光板에' 자막 방송이라도 하듯이 줄지어 지나가기도 한다. 마치 새들은 "문자 뉴스 몇 줄 떠오르며 스쳐"가지만 동일한 시선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르게 읽힌다. 이처럼 기러기 무리 이미지는 여러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러한 의미는 개별적인 상상을 통해 파악되는 것이다. 새떼를 일렬로 배열된 절도 있는 군인들의 '행군'이라고 한다면 '겨울 전선戰線'에 '급속히 남하'하는 전투적 형상으로 보게 된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는 순식간에 텅 빈 채 '허수아비'와 같이 무방비 상태에서 '일제히 멈춰 서서 허공을/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땅을 벗어난 허공에서 쓰는 '새들의 문장'에서 당신은 무엇을 읽고 있는가. 혹은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