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501001620300079251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박근혜 대통령은 여민락(與民樂)을 알까? 들은 적은 있을까?

조선의 성군 세종이 만든 음악이 여민락이다.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세종이지만, 음악에서 또한 그러했다. 세종은 직접 작곡도 했다. 세종이 막대기로 땅을 짚어가면서, 박자를 맞춰가며 작곡을 했다. 실록에 이런 사실이 기록돼 있다. (세종 31년, 1449년 12월)

세종은 이렇게 음률(音律)에 밝았다. 지금의 우리는 음악(音樂)이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음률(音律)이라고 했다. 소리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 음악이라면, 음률은 다르다. 법률(法律)이란 말이 있듯이, 률(律)이라는 것은 조화와 질서를 뜻한다. 세상을 바르게 이끌어 가는 데 있어서, 소리(음률)가 얼마만큼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광화문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졌다. 텔레비전에서 촛불집회 현장을 중계하는 영상에는 수많은 시민과 함께 세종대왕의 동상을 보게 된다. 청와대의 박 대통령은 물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겠지?

세종의 주변에는 우의정 맹사성과 같은 대신이 있었다. 세종은 그들에게 나라의 공식적인 의식에서 아악(중국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개탄하기도 했다. 조선사람은 살아서 조선음악을 듣는데, 죽어서는 중국음악을 듣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향악(조선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세종에게도 궁금증이 있었다. 실록과 사초가 어떻게 적혀지는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세종은 보고 싶어 했으나, 청백리 맹사성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조선의 여민락(與民樂)은 하나가 아니다. 세종에 의해서 창제된 여민락은 여러 곡의 파생곡을 만들어냈다. '하나의' 좋은 음악이 '또 다른' 좋은 음악을 만든 셈이다. 이런 것을 '선한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종이란 임금뿐만 아니라, 또 다른 그 누구도 여민락을 만들어낸 셈이다.

여민락은 거슬러 올라가면, 맹자의 정치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무릇 임금이란 존재는 '백성과 더불어서, 즐거움을 함께해야 한다'는 정치철학이다. 여민동락과 여민락은 모두 왕정시대의 산물이다. 민주시대가 아니었다. 시대적 한계가 분명하다. 당시의 임금과 백성의 관계는 어땠을까? "왕이 백성에게 고통을 주며 자기만 즐긴다면 백성들은 반발한다. 하지만 백성들이 잘 살 수 있게 만든다면, 왕이 즐기는 것을 함께 기뻐하겠다." 그게 당시 백성들의 생각이다. 백성들을 잘살게 해준다면, 왕이 개인적으로 어떻게 살든지 무관한 거다.

동양의 정치가들은 백성들의 삶을 '음악'을 통해서 확인하기도 했다. 백성들이 지금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에 귀를 기울였다. 난세지음(亂世之音)과 망국지음(亡國之音)을 경계했다.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질 때, 올바른 음악이 세상에 번진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반대로, 올바른 음악이 올바른 세상을 만든다고 믿었다. 이게 바로 저 유명한 치세지음(治世之音)이다.

/윤중강 평론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