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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안녕·가정 평화·사회 발전
매년 상식적이고 소박한 꿈 빌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도
'최순실 게이트·대통령 탄핵소추'
병신년의 트라우마는 극복돼야
다가오는 정유년이여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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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묵은해가 저물어가고 새해가 다가오는 길목에 서면, 사람들은 매번 그러하듯이 새로운 꿈과 소원을 빌게 된다. 그래서인지 해돋이를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곳이나, 해가 아름답게 지는 일몰 장소가 새해의 명승지가 된 지는 제법 오래된 것 같다.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꿈과 소원을 힘껏 외치면 그것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믿음이 이러한 새해 첫날 문화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다가오는 정유년(丁酉年)은, 모두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꿈이 하나 하나 이루어지길 마음 깊이 소망해본다.

돌이켜보면, 지난 병신년(丙申年)은 다사다난이라는 관용어가 부족할 만큼 부침이 심한 한 해였다. 그 사례야 넘치고 넘치겠지만, 우리는 정치권력의 정점에서 빚어진 스캔들을 한동안 가장 먼저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교도통신과 요미우리신문 역시 박근혜 대통령 관련 뉴스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에 이어 세 번째 빅뉴스로 뽑았다. 물론 이 글이 씌어지는 순간까지도 국정조사 청문회가 진행되고 있고, 특별검사 팀이 당사자들을 불러 조사를 시작한 만큼, 아직은 명명백백하게 법리적으로 밝혀진 건 없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미 최순실 게이트 또는 박근혜 게이트라고 이 사건을 명명하면서, 최순실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에 강도 높게 개입했고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의 설립에 관여하여 그 재단을 사유화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게다가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특혜를 받은 사례 등이 낱낱이 밝혀짐으로써 이 사건은 최순실 일가와 청와대의 오래된 부적절 관계 양상으로 번져가는 형국이 되었다. 거기에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동선(動線)까지 문제가 됨으로써, 결국 국회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결되기에 이르렀다. 아마 더 소상하게 나열한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이 미증유의 사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여러 해석과 제언을 할 수 있겠지만, 일단 이런 비유가 가능할 듯하다. 한쪽에 세상을 규율하는 이성적인 원리가 있다. 공동체의 합의에 의해 마련된 이 장치는 법이나 규범 혹은 윤리라는 이름으로 한 사회를 관통하고 유지해간다. 하지만 한 사회가 반드시 법과 규범과 윤리에 의해 추동되어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른 한쪽에 편법(불법, 탈법)이나 반규범 같은 것들이 한시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이성적 원리를 흔들어놓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성숙한 사회는 이러한 원심력들을 탄력 있게 흡수함으로써 법과 규범과 윤리를 근원적 차원에서 지켜가게 마련이다. 편법이 잠시 있더라도, 그것을 압도적으로 흡수해 들이는 '상식의 장치'가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바로 그 합리적 원리가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편법과 불법과 반규범과 비윤리가 견고하게 짝을 이루어 한 시대를 풍미한 사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사회를 관통하고 유지하는 원리가 그러한 탈법적 요소들을 전혀 흡수하지 못한 채, 정치권력의 정점이 그 요소들을 노골적으로 전면화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점에서 이번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건 그 내면에 형언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추운 광장에서 '탄핵 무효'를 외치며 대통령을 옹호하는 이들조차 마음속으로는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당혹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상처가 치유되고 한 사회가 합리적 원리에 의해 재가동되는 데 최소한 1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아득하고 민망하고 억울하다.

사람들이 떠오르는 해를 보며 외쳐보는 새로운 꿈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작년에도 빌었고 그 전해에도 빌었던 것을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재현해보는 것일 터이다. 분명코 그것은 상식에 바탕을 둔 소박하고 합리적인 꿈일 것이다. 개인의 안녕과 가정의 평화와 사회의 발전 같은 것일 것이다. 그러한 꿈이 투명한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도, 이 병신년의 트라우마는 극복되어야 한다. 이것 또한 지난하기는 하지만 얼마나 합리적인 꿈일 것인가. 정유년이여, 응답하라.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