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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어지럽고 힘들 때면 그 시절을 지혜롭게 헤쳐 간 인물들이 생각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강태공이다. 천자문에 반계(磻溪)와 이윤(伊尹)은 때를 도운 사부였다는 구절이 있다. 이윤은 많은 이들이 역사적 인물로 많이 이야기하지만 강태공은 그 생애가 신비로운 인물이다. 조선전기 무과의 과거시험과목이었던 '무경칠서(武經七書)'의 하나인 육도(六도)의 원저자는 강태공이라고 한다. 역대 신선들의 기록인 '열선전'에 의하면 강태공의 본명은 呂尙으로 冀州人이라고 되어있다. 나면서부터 지혜가 있어 존망을 예견했다고 한다. 은나라 말 어지러운 시기를 당해 요동(遼東)에 40년간 피해 있다가 그 후 西周로 가서 남산아래 시내에서 낚시를 했는데 그 시내이름이 반계(磻溪)라서 강태공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3년이 지나고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주위에서 그만 두라고 하니 '네가 알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하고는 결국 물고기 뱃속에서 군사비기인 병검(兵鈐)을 얻었다고 한다. 그 후 문왕이 꿈을 꾸고 강태공을 수레로 모시고 와서 무왕이 은나라를 멸할 때 병서 100편을 지었다고 한다. 택지(澤芝)와 지수(地髓)를 복용하며 수가 200세에 이르렀는데 나중에 장사지내려고 보니 시체는 없고 옥검(玉鈐) 6편만이 있었다고 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