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801000597200027902

자연 생태계의 보고 DMZ
옛날 사신이 중국에 가고 오던 길
평양行 가장 빠르고 편리했던 길
軍허가로 많이 찾아 열리기 시작
자유·평화·안보 생각하게 하는 곳
많은 발길로 또다른 길 생겼으면


clip20161117145817
홍승표 경기관광공사 사장
파주 땅 DMZ 장단반도엔 '높은음자리'라는 애칭의 '해마루촌'이 있습니다. 장단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6·25 이후 유랑 생활을 하다가 다시 이곳에 60세대의 마을을 만들어 모여 사는 곳이지요. 원래 '동파'(東坡)라고 했지만 순우리말로 해마루라 하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높은음자리 형상과 같아 별칭이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마을 앞길은 옛날 중국을 오가는 사신(使臣)이 지나던 곳이었고, 근대에도 평양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지요. 지금은 DMZ 내에 있고 출입이 통제돼 잡풀이 무성합니다. 하지만 울창하게 우거진 많은 나무가 터널을 이룬 이 길은 꼭 걸어보고 싶은 곳입니다.

'해마루촌'에서 시작되는 길을 따라가면 1·21 무장공비가 침투했던 철책 길도 만나볼 수 있지요. 그 당시 경비를 섰던 초소 건물도 그대로 잘 보존돼 있습니다. '동의보감'으로 유명한 허준의 묘역도 돌아볼 수 있지요. 그래서인지 이곳은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찾아드는 필수 코스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승전전망대'에선 눈앞에 펼쳐진 철책은 물론, 북한의 초소와 송악산 일원까지 곳곳을 살펴볼 수 있고 철책 길 구간을 걷는 체험도 할 수가 있지요. 인근에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왕릉이 자리 잡고 있어 묘역을 돌아보며 역사 향기를 느껴보기 좋습니다.

임진강 변 현무암 절벽 위에 축성한 호로고루 성지(瓠蘆古壘 城址)는 아름다운 정경으로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사적입니다. 이 성은 고구려의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신라의 침략을 막을 겸 남진을 위한 교두보로 삼기 위해 만들었는데, 오늘날에도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성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고려 때의 왕과 공신들 제사를 모신 숭의전지(崇義殿址)도 역사 향기를 느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사적입니다. 아늑한 숲 향기와 곳곳에 살아 숨 쉬는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이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마루촌엔 사람보다 고라니나 멧돼지, 철새가 더 많이 찾아드는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포격도발사건 때 총리가 이곳을 찾아오면서 제법 명성을 얻었지요. 지금은 마을회관에 식당까지 마련되고, 적지 않게 사람이 찾아들면서 사람 냄새 나는 마을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또 해마루촌 주변에 길이 형성되자 지금은 이 길을 이웃 연천마을까지 연결하는 관광코스로 추진 중입니다. 길은 길로 통한다고 하지요. 아름다운 길과 역사유적이 있고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있어 역사, 안보, 생태체험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DMZ는 아직도 6·25 상흔이 남아 있고, 남북이 대처하는 아픔을 간직한 곳이지요. 그러나 오랜 세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덕에 상대적으로 생태환경이 잘 보전됐습니다. 해마다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산짐승이 뛰어놀고, 철새가 끊이지 않고 찾아드는 곳이 DMZ이지요. 말 그대로 자연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DMZ는 자유와 평화를 위해 우리가 얼마나 오래 참고 견뎌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철책 길을 걷고 아름다운 자연과 호흡하는 이곳은 단순히 삶에 찌든 마음을 치유하는 차원을 넘어 안보를 생각하게 되는 공간입니다.

태초에 길은 없었지요. 사람이 다니면서 길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옛날 사신이 중국에 가고 오던 길, 근대에도 평양으로 향하던 가장 빠르고 편리했던 길, 이 길이 오랫동안 민간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지역으로 묶였지만, 많은 사람이 군부대의 허가를 받아 이곳을 찾아듭니다. 비로소 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지요. 길이 길을 만듭니다. 역사유적에서 조상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곳, 그러면서 잘 보전된 생태환경과 자유·평화·안보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곳,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의 발길로 또 다른 길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려 봅니다.

/홍승표 경기관광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