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는 노력없이 학점 따고
허술한 계획서로 사업 따내고
'그들만의 기적'에 허탈감과 분노
썩어빠진 세계 파헤치고 바꿔
나아진 세상 기대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만든 기적

어느 해인가 중간고사 기간에 시험 공부를 할 시간이 모자라서 초조해진 나는 하루만, 딱 하루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발을 동동 굴렀는데 정말 시험이 미루어졌다. 그 당시 우리 학교 팀이 참가하는 체육대회가 공설운동장에서 열려서 응원을 가게 된 것이었다. 물론 반나절은 뙤약볕에 앉아서 응원을 해야 하니까 그 시간에 시험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그때 시험이 미루어졌던 소식을 들은 순간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기억에 남았다. 어린 마음에 그때 정말 세상에는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과연 원하는 성적을 받았는지 얼마나 효과가 있는 기적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오히려 그런 깜짝 놀랄 만한 기적의 순간이 오지 않았던 것 같다. 예정대로 모든 시험들은 치러졌고 운이 좋았는지 좋지 않았는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한 만큼 결과가 나왔다. 원고를 쓴 만큼 원고료가 입금되었고 지출해야 하는 만큼 또 지출했다. 아버지는 내가 어려서부터 주택복권 구매자였고 로또가 나오고부터는 로또를 거의 매주 사지만 복권이 당첨되어서 기적적으로 부자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복권이 당첨되면 집을 한채씩 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알고 보니 집은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은행에 가서 20년 가까이 빚을 갚을 약속을 하면서, 내 집에 '저당'이라는 것을 허용하면서 마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더 나아가 기적이라는 것이 왜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이 사회에서 살면 살수록 어쩌면 기적은 다른 게 아니라 하루하루 버티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그런 건 일상의 소박한 행복을 느끼는 것과는 결이 다른 오히려 만성화된 불행이 불러일으키는 방어적이고 냉소적인 태도에 가까웠다. 기적이라는 것이 어떤 의외성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켜서 변화의 가능성을 믿게 한다면, 그러한 기적을 믿지 않는 사회란 현재의 시스템에 안착하고 그 유지를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세계였다.
그런데 요즘 정치 관련 뉴스들을 보면 누구에게는 기적이 쉽게도 일어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밤을 새워 레포트를 쓰고 시험을 치르며 출석을 해야 겨우 딸 수 있는 학점을 누군가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쉽게 따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생 가야 한번 만져보기도 힘든 금액의 명마를 참 기적적으로 누군가의 기증으로 쉽게 얻는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입김만으로도 고위관직에 오르고 빈 페이퍼에 가까운 계획서로도 사업을 따낸다. 그렇듯 현실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그들만의 기적'은 지금 우리를 허탈감과 분노 속에 몰아넣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그것을 주시하게 된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 썩어빠진 세계를 파헤치고 고발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직도 더 엉망인 세계에서 살아야 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 왜소해진 기적의 힘에 대해서도 다시 가늠해보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세상이 바뀐다면, 나아진 세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면 다름이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기적이 될 테니 말이다. 그렇게 내가 당장 치를 시험이 아니라 이 사회를 바꿀 기적을 바라고 믿게 된 것, 생각해보니 그렇다면 기적은 왜소해진 것이 아니라 성장한 것이 아닐까.
/김금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