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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연출가
악보는 많은 음표로 구성돼 있다. 음표가 둘 이상 모여서 화음을 이룬다. 어울리는 것이 협화음, 안 어울리는 것은 불협화음이다.

그렇다면 불협화음은 협화음이 될 수 있을까? 작곡에 능한 사람일수록, '불협화음'을 '협화음'처럼 만드는 게 가능하다. 중간에 어떤 다른 음을 집어넣어서, 불협화음을 협화음처럼 들리게 만든다. 이건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 사이에, 이 둘을 잘 이해해주는 제 3자가 개입하는 것과 같다. 연주를 통해서도, 불협화음을 협화음처럼 들리게 할 수 있다. 협화음은 더욱 강하게 드러나게 하고, 불협화음은 약하게 처리를 하면 조화롭게 들릴 수 있다. 어울리는 관계를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거다.

그런데 명백한 것은, 이렇게 불협화음을 협화음처럼 애써서 만든다손 치더라도, 단지 그렇게 들릴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 안에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내재돼 있다는 건 바뀔 수 없다. 불협화음은 결코 협화음이 되지 않고, 협화음이 불협화음으로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 단지 그걸 표면상으로 완화시킬 뿐이다.

음표를 사람으로 바꿔보자. 사람 사이에도, 어울리기 쉬운 관계와 어울리기 어려운 관계가 있다. 협화음처럼 좋은 관계는,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그리 된다. 반면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어울리게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안타까운 건, 그렇게 한다손 치더라도, 그게 진심으로 어울리는 게 아니라 표면상 그렇게 보일뿐이란 사실!

나는 오십이 될 때까지, 사람과 틀어져지는 것을 무척 경계했다.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해주길 바랐다. 내가 누구에게나 '협화음'이 되길 바랐다. 이건 불가능하다. 이것만큼 세상에 어리석은 일은 없다.

우리들은 모두 음표다. 나와 어울리는 음표가 있는가 하면, 나와 어울리기 힘든 음표가 있다. 이걸 인정해야 한다. 세상에는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고,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다.

당신은 신이 아니다. 당신은 인간이다. 당신에게는 희로애락의 코드가 있다. 이런 코드와 맞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게 중요하다. 당신과 맞지 않는 사람들과는 만나지 않는 게 현명하다. 그들과의 부딪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앞선 작곡가 혹은 연주가처럼 말이다. 둘 사이에 어떤 또 다른 사람을 두거나, 충돌의 횟수와 정도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당신의 인생은 길어야 백년이다. 당신이 오십을 넘겼다면 더욱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진리에 순응해야 한다. 불협화음을 알면서도 협화음으로 만들고자 하는 건,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는 것' 이상으로 어리석다. 당신과 좋은 사람들을 좀 더 융숭하게 대하는 게 중요하다. 그럴 때 당신들의 협화음은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윤중강 평론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