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러기가 높이 날아 화살을 피한다"는 홍비탈익(鴻飛脫익)은 조선조 조헌(趙憲)의 상소문에 있는 표현이다. 당시 세상을 구제할만한 인재들이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정치권력의 해악(害惡)을 피해 떠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글귀이다. 새가 마음 편히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지 못하는 시절에는 늘 두렵다. 날개가 있는지라 날지 않을 수는 없으니 낮게 날면 사냥꾼이 쏘는 화살에 해를 입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때는 시야를 벗어날 정도로 높이 날아간다는 것이다. 기묘사화를 예견하고 성시(城市)에 숨어산 성수침(成守琛), 형인 성우(成遇)가 말 한마디로 문초를 받다 죽자 보은(報恩)에 숨어산 성운(成運), 유배도중 죽은 형의 일을 상심해서 예안(禮安)으로 물러간 이황, 동생이 어진 이를 해치는 것을 보고는 세상을 등지고 살았던 임억령(林億齡)과 화담(花潭)에 은둔한 서경덕(徐敬德), 출사를 끊은 김인후(金麟厚), 스승의 일을 징계하여 이름을 감추고 술로 세월을 보낸 정지운(鄭之雲), 친우 안명세(安命世)의 억울한 처형을 보고 바다와 섬을 돌아다니면서 양광(佯狂)으로 세상을 피해 산 토정 이지함(李之함) 등을 대표적 인물로 들었다. 공자는 시경의 한 구절을 인용해서 새들도 시절에 따라 자기들이 있을 곳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그것을 모르면 되겠냐고 탄식하였지만 시절을 알고 사람을 안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