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공항이전 등 지역간 갈등 대두
이럴때 정조대왕 능행차로
수도권 대표도시들이 뭉치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격물치지' 선인말씀 갈수록 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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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
세상 살다 보면 증명하거나 실증할 수 없는 것들이 참으로 많다. 대개 입증하기 어려운 것들은 우연의 일치이거나 견강부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끝없이 궁구하여 합리적인 결론에 이르기 위한 '격물치지'를 해보는 것이다.

격물치지는 '대학'에서 나왔다. 요즘은 새삼 격물치지란 말이 실감 난다.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새로운 인식에 이른다'는 이 금언은 우리 문화유산을 궁구하는 데도 고스란히 통용된다.

올해도 정조대왕 능행차가 수원·화성·서울시의 공동 주최에 종로·동작·금천구와 안양· 의왕시 등 주요 지자체의 참여로 진행된다. 조선후기 최대의 국가행사였던 능행차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재현되며, 정조대왕 능행차는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역협력 축제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축제의 행로를 보면, '원행을묘정리의궤' 같은 실증적인 사료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서울에서 시작하여 안양을 거쳐 수원과 화성의 융릉에 이르는 능행차길이 흡사 전통사찰의 가람배치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능행차를 공동으로 재현하는 수원·안양·서울 등 수도권 주요 도시들이 경주 불국사와 영주 부석사 그리고 서산 개심사 같은 전국의 주요 사찰의 가람배치와 유사한 공간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불국사는 신라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축소해 놓은 대가람이다. 불국사의 공간 구성을 살펴보면 부처가 있는 극락세계에 이르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코스가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통해서 연지(蓮池)를 건너야 하고, 극락정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안양' 곧 안양문을 거쳐서 비로소 극락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안양'이라는 당호는 불국사 외에도 서산의 개심사와 영주 부석사에도 있다. '안양루'가 그것이다. 안양루 앞에는 대개 연못이 있으며 '안양루'를 거쳐 최고의 이상적 공간인 대웅전이나 무량수전에 이를 수 있다. 그러니까 이상 세계를 가기 위해서는 물을 건너면서 심신을 정화하고 안양문이나 안양루를 통과해서 부처가 모셔진 본전(本殿)에 이르는 것이다. 이 우연한 일치를 서울·안양·수원에 대입해보면 물과 연지는 '수원시'에, 안양루와 안양문은 '안양시'에, 최종 목적지인 본전은 '서울'에 해당된다.

본전에 해당하는 서울이란 지명도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서울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갈래의 설이 있으나 신라의 수도 '서라벌'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면 서라벌은 또 어디에서 나온 말인가. 서라벌은 인도 코살라국의 수도이자 기원정사가 있었던 사위성(舍衛城) 곧 슈라바스티( avatthi)에서 왔다고 한다. 한자로 옮기면 실라벌(室羅筏), 나중에는 'ㄹ'이 탈락하여 서라벌이 되었다.

한국에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시기는 1952년이나 박정희 시대 중단되었다 1995년 문민정부 시대에 부활하였으니 올해로 23년째가 된다. 아직 여러 문제점과 부작용도 적지 않으나 지자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국가의 일방통행식 통치와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좋은 제도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하며 폭력과 억압을 일삼아왔던 경우가 너무 많다. 자연법 사상가 홉즈(1588~1679)는 국가를 무시무시한 괴물인 '리바이어던'에 비유하기도 했다.

지자제가 시행되면서 군공항 이전 문제 등 지역 간 갈등이 대두되고 있다. 이런 때 수원·화성 ·안양·서울 등 수도권 대표도시들이 정조대왕 능행차로 하나로 뭉치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이는 유구한 우리 국토관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지명 하나에도 이렇게 소중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 '격물치지'란 선인들의 말씀이 갈수록 소중하게 다가온다.

/조성면 문학평론·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