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엔 섬주민들의 열정 넘쳐나
뭍사람들에게는 쉼이 되고
섬사람들에게는 삶이 되는 섬
더이상 서럽고 소외되지 않길 희망

태풍 '솔릭'이 한바탕 난리를 치고 지나간 지난 8월 말, 인천광역시 옹진군의 아름다운 섬 대이작도에서 섬마을 음악회가 열렸다.
이미자 선생은 1966년 방송된 KBS 라디오 드라마 <섬마을 선생님>의 동명 주제가를 불렀다. 곡은 일주일 만에 히트했다. 드라마와 노래가 히트하면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고(故) 김기덕 감독의 <섬마을 선생>이 1967년 개봉했다. 이 영화의 촬영지가 대이작도이다. 계남분교를 비롯해 섬 곳곳에 영화의 흔적들이 아직 남아 있다. 섬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도 당시 영화를 촬영했던 추억이 아직 또렷하다.
'<섬마을 선생님> 음악회인가. 노래와 인연이 많은 섬이니 그런 공연을 하나 보다'고 생각하며 무대 옆에 차려진 음식 부스에서 막걸리와 안주를 시켜 먹으며 별다른 기대 없이 공연을 기다렸다. 풀벌레 소리가 그윽해지고 섬을 찾은 관광객들이 대이작도 해양생태관 야외 객석에 하나둘 모인다. 섬 주민들도 일찌감치 자리에 앉았다. 태풍이 지나간 뒤라 바람은 상냥하고 바다에 잠기는 노을은 더 붉다.
"우리 며느리 나왔네", "우리 막내 나왔네". 객석에서 들뜬 소리가 들린다. 무대에 오른 주인공들은 섬마을 주민들이다. 민박집 아저씨가 어느새 무대에 올라 기타를 치고, 낮에 배를 태워줬던 선장님이 노래를 부른다. 멀리 강화도와 영흥도의 섬 주민들도 연주자로 음악회에 참여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색소폰도 분다. 어딘가 서툴러도 진지한 마음이 느껴진다. 섬주민이 주인공인 '섬마을밴드 음악축제'. 인천문화재단에서 기획한 공연이다. 직업으로 인해 방송 공연 연출을 많이 해봤지만, 이 공연은 특별해 보였다. 섬을 찾아 주민을 '위문'하는 그런 흔한 음악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섬 주민이 문화의 주체인 공연.
이날 공연을 위해 강화도, 이작도, 영흥도 섬마을 주민들은 전문 음악인들에게 교육을 받았다. 지난 5월부터 매달 두세 번씩 만나 연습을 했다고 한다. 생업을 이어가기도 바쁜데 그래도 음악을 연주하는 건 즐거웠다. 무대에 오른 이들의 표정에 모든 게 담겨있다.
"연주만 하지 말고 노래를 불러", "트로트를 해줘". 객석에 앉아 있으니 주민들 요청이 생생히 들린다. 섬에서 이런 날이 흔치 않기에 요구사항도 많다. 아마추어들 무대이니 자리를 떠나는 여행객들도 더러 있다. 공연을 지켜보며 '아이고, 이건 이렇게 하면 더 좋을 텐데' 나도 모르게 PD 직업병이 나온다. 하지만 어떠랴. 무대는 흥이 넘친다. 서럽고 외면당한 섬. 오늘만큼은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이 주인공이다. 섬을 찾은 관광객들도 이들의 열정에 점잖게 박수를 보낸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도서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음악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한 공연. 인천문화재단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한 기획이었다.
본 무대가 끝나자 주민들의 노래자랑이 늦여름 밤 아쉬움을 달랜다. 유독 흥이 많은 이작도 주민들의 노래가 끊이질 않는다. 밀물이면 나타나고 썰물이면 사라지는 아름다운 모래섬 '풀등'을 노래한 가수 오예중의 무대도 이어진다.
섬마을 음악회는 올해가 두 번째라고 한다. 섬 주민들의 열정이 있으니 내년에는 더 멋진 무대가 될 듯하다. 여행객들도 향유할 수 있는 공연을 연출한다면, 섬사람과 뭍사람들이 한데 어울리는 무대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 같은 기획을 섬을 찾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뭍사람들에게는 쉼이 되고, 섬사람들에게는 삶이 되는 섬. 더 이상 서럽고 소외되지 않는, 흥과 문화가 넘치는 곳이 되길 희망한다.
/안병진 경인방송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