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이끄는 당나라 정예병 20만 대군과 고립무원에 빠진 안시성을 지키는 5천명의 고구려 군사들.
숫적으로 '40대 1'이란 엄청난 열세를 뒤집고 당나라 황제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안긴 고구려 '안시성 전투'는 한국 전쟁사에서도 위대한 승리 중 하나로 꼽힌다.
김광식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스펙터클 액션 영화 '안시성'은 영어 제목 'THE GREAT BATTLE'이 의미하는 것처럼 고구려군의 '위대한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때는 서기 645년(고구려 보장왕 4년), 중국을 호령하고 있던 당나라 태종은 대신들의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고구려를 전격 침공한다. 한반도 북부는 물론이고 드넓은 요동 일대까지 장악하며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고구려가 당나라에 위협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당 태종은 ' 영류왕과 대신들을 살해하고 집권한 연개소문을 벌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앞세워 그해 4월 1일 고구려 침공을 시작했다.
영화 '안시성' 스틸컷 /(주)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제공
고구려의 요충지였던 개모성과 비사성을 함락하며 기세가 오른 당나라 군대는 당 태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구려의 최고 요새로 꼽히는 요동성마저 무너뜨리고 6월 20일 물밀듯 안시성으로 들이닥쳤다.
고구려가 당나라 군대에 저항해 출정시킨 15만의 군대는 안시성 눈앞에서 당나라 군대에 무참히 패배했고, 안시성은 남은 5천의 군사로 기세가 오른 당나라 군대 20만을 상대해야 하는 위기에 몰린다.
하지만 고구려 군은 강했다. 당나라 군사의 집요한 공격은 험한 지형을 배경으로 굳건히 버틴 고구려군의 방어에 번번히 꺾였다. 높은 성벽에 고전하던 당나라 군사들은 60일 동안 성의 동남쪽에 성벽보다 높게 흙으로 산을 쌓아 공격에 나서기도 했지만, 토산 한쪽이 무너져 혼란에 빠진 사이에 고구려 군사들이 토산을 점령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추위가 닥치도록 안시성을 함락하지 못한 당 태종은 그해 9월 18일 안시성 포위를 풀고 본국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고구려의 문헌에는 이때 당 태종이 고구려군이 쏜 화살에 눈을 맞았다고 전했으며, 당나라는 고구려 정벌 실패로 큰 타격을 받아 이후 고구려 침공을 후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 '안시성' 스틸컷 /(주)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제공
김광식 감독은 그동안 스크린에서 소외됐던 고구려의 전쟁사를 꺼내 들었다. 부족한 역사적 사료를 보충하기 위해 100권에 달하는 서적을 참고했다는 김 감독은 안시성 전투를 이끈 양만춘 장군(조인성 역)과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 역) 등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실감나게 살리기 위해 애를 썼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고구려, 특히 '안시성 전투'와 관련된 사료가 부족해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남아 있는 사료를 통해 100% 고증 가능한 부분은 철저하게 고증했다"며 "그 외의 이야기와 요소들은 영화적 상상력을 더하는 작업을 거쳤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