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앞엔 적이 없듯
헌법과 민주주의 절차 따라
공정하고 준엄한 규칙 세우는것
오로지 도민만을 생각하고
위임받은 권력 행사하면 된다


이기영 경기도공공기관노동조합총연맹 의장
이기영 경기도공공기관노동조합총연맹 의장
민선 7기가 시작되고 벌써 100여 일이 흘렀다. 선거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지만 16년 만에 '정권교체'였던 만큼 기대는 컸다. 공정과 정의를 앞세운 지사님의 취임 일성은 그간 켜켜이 남은 도정 적폐의 쇄신을 기대하게 했고 정권 기조에 맞춰 평화부지사를 먼저 임명했을 땐 새로운 경기도가 금방이라도 펼쳐질 줄 알았다. 인수위원회에 이런저런 정책을 제안한 것도 그 기대를 현실로 만드는데 미력이나마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취임 한 달여가 지났을 때만 해도 민선 7기의 청사진을 향한 기대감은 유효했다. 예산 규모만 25조원로 서울과 함께 전국 지자체 중에 가장 큰 규모인 데다 인구 1천300만명의 메갈로폴리스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으면서도 수원, 안양과 같은 상권집약적 도시와 안산, 시흥 같은 산업도시, 남양주, 가평과 같은 도농복합도시는 물론 연천, 포천과 같은 군사도시까지 있으니 정책 하나를 만들어도 따져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맨 먼저 지사님의 행보를 가로막은 것은 도청 공무원들이었다. 전 직원 명찰 패용이 문제였다. 벌써 지사님보다 몇 년이나 더 오래 도청에서 근무한 공무원들이다. '당신은 4년 뒤에 떠나지만 우리는 남는다' 그런 생각들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조직 문화를 새롭게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 않았던 일들, 불편한 일들은 많은 사람에게는 피하고 싶은 일이 된다. 게다가 복지부동의 표상인 관료사회다.

우리 경기도공공기관노동조합총연맹(이하 경공노총)은 노동이사제도의 진행이 실망스러웠다.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도를 도입하면서 노동자의 대표인 노동조합을 배제하는 안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정작 노동이사제도를 도입해야 하는 공공기관의 의견수렴은 형식에 그쳤고 우리 경공노총이 제출한 의견서는 '답정너', 사실상 묵살됐다. 후에 들으니 공약사항임에도 지사 보고 없이 집행부에서 결정했단다.

최근에는 낙하산 문제가 불거졌다. 문화예술계 산하기관인 경기도문화의전당과 경기문화재단이 임원 선정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전문성과 경험이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는 요구였다. 공정과 정의를 앞세웠던 만큼 낙하산 운운은 뼈아픈 장면이었다. 게다가 지사와 같은 당 소속이 다수인 도의회까지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가까이서 도정과 정책을 수행해야 할 공무원, 산하기관, 심지어 도의회까지 석 달 사이에 지사님과 등을 지는 모양새다.

한발 물러나보자. 그간 여러 차례 정치인들의 제 사람 챙기기에 신물 난 문화예술인들의 분노는 민선 7기에 대한 실망감, 아니 기대감의 증거다. 도의회는 차제에 산하기관과 집행부에 힘을 보여주면서 정권을 주도하려는 명분을 찾고자 했을 것이다. 여기다 그간 관행에서 벗어나기 불편한 관료사회의 관성이 민선 7기의 정책 동력을 약화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일련의 사태들을 마치 새 지사의 발목을 잡으려는 책동으로 읽는 것도 맞지 않는다.

실책이다. 앞에서는 소통을 말하면서 뒤로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앞에서 공정을 외치면서도 낙하산 후보군 리스트를 내보였다. 1천300만 명 경기도민의 주권을 대리하여 행정권을 집행하는 최종 집행권자라면 그 책임감의 무게는 꼭 1천300만 명의 삶의 무게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 조금 더 살피고 따졌어야 했다. 무엇이 원칙에 닿고 어느 것이 효율이 필요한 건지 물었어야 했다. 견고하게 뿌리내린 적폐가 명분의 탈을 쓰고 공정과 정의를 패배하려 들게 하지 않았어야 했다.

나는 아직 지사님과 민선 7기를 믿는다. 방법은 하나다. 원칙이다. 원칙 앞엔 적이 없다. 헌법과 민주주의의 절차 따라, 지사께서 외치신 공정과 정의에 입각해 준엄한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오로지 도민, 오로지 도민만을 생각하고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하시면 된다. 그 권력이 애민으로 향할 때 공무원들은 국민의 봉사자를 포기할 수 없으며 의회 역시 주민의 대의기관으로서 역할을 다 할 것이다. 우리 경공노총과 공공기관 노동자들 역시 그 길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사께서는 오로지 원칙, 오로지 도민만 생각하시라. 부디 지지 마시라.

/이기영 경기도공공기관노동조합총연맹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