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느 사람들처럼 방관하지 않고
용기를 내 행동으로 '사랑' 실천한것
요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사회복지 가치 아닌가 싶다

스치는 생각이 왜 하필 저 노숙인이 이 식당에 들어와서 모처럼 맛난 식사를 즐기려는데 밥맛 떨어지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내 생각이 정말 부끄러울 정도로 어리석게 느껴지고 말았다. "사장님 혹시 이분 여기서 식사해도 될까요?" 사장 아주머니는 노숙인을 보며 순간 멈칫하더니 홀을 한번 둘러보고는 손님도 빠져나가고 마침 빈 테이블이 많아서인지 괜찮다고 하셨다. 여성은 설렁탕 값 5천원을 사장 아주머니에게 주면서 "이분 여기서 식사 잘하고 가실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러고는 노숙인에게 "아저씨 식사 맛있게 하시고 건강하세요"라고 하면서 공손히 인사하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마 본인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의 대화가 내 머리를 한 대 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난 사회복지를 한다고 하면서 노숙인에게 밥 한 끼 사준 적이 있었던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금활동한답시고 좋은 곳만 찾아다니지는 않았는지. 아니 오히려 그들을 보면 불결하게 느껴져 돌아서서 가지 않았던가?
심리학에서는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는 것이 있다. '구경꾼 효과'라고도 하는데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경우, 곁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방관함으로써 생기는 여러 현상 가운데서도 특히 어려운 처지에 놓인 낯선 사람을 도와주지 않을 때 흔히 쓴다. 사람들이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데는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나 성격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그러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 주위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와줄 확률은 낮아지고,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지 시간은 더 길어진다. 아무 대가 없이 남을 도우려는 마음, 남을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 인간만이 지닌 그 불가사의한 힘을 일컬어 '사랑'이라고 한다. 노숙인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한 여성은 그 여느 사람들처럼 방관하지 않고 의지를 가지고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 의 한 시구처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그날 그 여성은 나에게 묻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물음은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노숙인에게 여성은 분명 뜨거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노숙인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사줄 수 있는 행함과 용기, 그것이 요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사회복지의 가치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사회복지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매년 신입생을 받을 때면 무엇보다도 사회복지는 인간존중의 가치를 가지고 이론과 관념만이 아닌 결단과 행함이 필요하다고 이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20여 년 전 깊어가는 가을 어느 날,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해준 그 여인과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게 아쉽다. 지금도 이맘때가 되면 모르는 노숙인을 도와주었던 그 모르는 여자가 생각난다. 아름답게….
/조승석 경인여자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