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수준도 높은
글로벌 첨단기업들 들어선
區 개청 15년 맞은 '스마트 도시'
더욱 발전된 모습 담기길 바란다

'영통'이란 이름은 마을의 지형이 염통처럼 생겼다 하여 염통 혹은 영통이라 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와는 달리 용인시 영덕동, 하갈동과 영통의 경계에 접해 있는 해발 191.1m의 청명산 봉우리에 있는 우물 속의 보물이 영(靈)과 통(通)하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어 그 주변의 마을을 영통이라 부르게 되었고 구의 명칭도 영통구로 정했다.
지도는 언제부터 그렸을까?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지도로는 기원전 900년경에 만들어진 고대 바빌로니아 지방(현재 이라크 남부지역)의 진흙판 지도가 가장 오래되었다.
우리나라의 지도는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져 국경을 정하거나 전쟁시 또는 외교적 교섭에 활용되었다. 조선시대에 지도의 제작과 소장은 극비 사항이었다. 민간인의 소장도 금했다. 특히 일본이나 중국으로의 유출은 철저히 금지되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지도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다. 조선 태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이전하고 팔도의 행정구역을 개편하고 나서 태종2년(1402)에 그려졌다. 이회, 권근 등을 비롯한 학자들이 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 수 있도록 만든 세계지도로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까지 표현되어 있다. 세조 때에 제작된 필사본 원본은 소실되고 모사본만 남아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도 자랑할 만한 이 지도가 우리나라에는 없다. 임진왜란 전후 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시대 지도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는 지도는 단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다. 1861년 제작 당시까지 이어져온 지도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표현방식을 가미해 제작되었다. 행정·군사적 목적의 실용성, 판화적인 예술미 등 현재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지도는 땅 위의 사회·문화적인 현상이 나타나 있는 그림이다. 내비게이션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종이 지도책을 옆에 놓고 가고자 하는 곳을 찾아다녔지만 이제는 지도가 없어도 기계음에서 나오는 소리만 잘 들어도 길을 찾아가는 세상이다.
영통구는 크게 매탄권역, 영통권역, 광교권역과 망포권역으로 나뉜다. 15년 전 광교권역은 야산과 논밭이었다. 이제는 광교지구 개발로 경기도청 복합청사, 수원고등법원, 고등검찰청, 지방법원, 지방검찰청, 테크노밸리 등 경기 남부의 거점시설은 물론 박물관 · 도서관 등의 주민편의시설과 지하철로 30분이면 강남과 연결되는 첨단 신도시로 탈바꿈했다.
영통구는 구민의 평균연령 36세인 젊은 도시, 문화수준이 높은 도시, 글로벌 첨단 기업들이 입지한 스마트도시다. 구 개청 15주년에 주민들이 그린 지도는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들이 돋보여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앞으로 영통구 지도에 담길 더욱 발전된 모습은 사뭇 기대가 크다.
영통구 개청 15주년을 맞아 그린 지도에는 주민들의 지역 사랑하는 마음들이 돋보여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구민의 평균 연령 36세인 젊은 도시, 문화수준이 높은 도시, 글로벌 첨단 기업들이 입지한 스마트도시 영통구의 지도에 더욱 발전된 모습이 담기길 바란다.
/지준만 수원시 영통구 종합민원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