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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1779년(정조 3) 9월 28일, 창덕궁 인정전 옥좌에 앉아 있던 정조는 전각 안에 서 있는 홍국영을 차분히 바라봤다. 정조는 홍국영이 궁 안으로 들어오기 직전 그에게 지팡이와 나무로 만든 의자를 선물로 주었다. 

 

국왕이 서른세 살 밖에 되지 않은 젊은이에게 지팡이와 의자를 주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팡이와 의자는 주로 70세가 넘는 정승급의 은퇴 관료에게 주는 것이 보통인데, 정조는 이를 홍국영에게 하사한 것이다. 인정전에서 홍국영을 만난 정조는 그에게 더 이상 정치적 행위를 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편하게 쉬라고 권유했다. 이는 권유가 아니라 사실상 퇴출 명령이었다. 정조의 한마디로 인해 한때 천하를 쥐락펴락했던 홍국영은 영원히 조정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홍국영은 왜 조정에서 방출된 것일까? 그는 정조 즉위의 일등공신이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동궁(東宮·왕세자)으로서 영조의 뒤를 이어 조선의 국왕이 될 위치에 있었지만,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몬 세력들은 세손인 정조마저 제거하려고 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이때 홍국영이 정조의 동궁시강원 설서(說書·세자에게 경사(經史)와 도의(道義)를 가르치는 직책)로 있으면서 정조를 보좌했고, 끝내 그가 조선의 국왕에 오르도록 했다. 이후 홍국영은 정권 창출에 가장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 본인이라고 생각하며 정조에게 특별한 자리를 요구했고, 정조 역시 홍국영에게 공이 있다고 생각해 주요 직책을 주었다. 그런데 그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넘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정조는 홍국영에게 도승지와 금위대장, 병조판서, 숙위대장의 지위를 모두 주었던 것이다. 또 모든 신료들을 통제하는 중영대장(中營大將)까지 맡았기에 그의 권한은 막강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직책으로 보자면 청와대 비서실장에 경호실장, 국방부장관, 여기에 더해 국가정보원장까지 맡게 한 것이다. 

 

정조의 신임을 바탕으로 큰 권력을 손아귀에 쥐게 되자 조정에서는 아무도 홍국영을 건드리지 못했다. 오랜 기간 무반 벌열로 무사들의 제왕으로 불렸던 무종(武宗) 구선복도, 대동법을 만든 김육의 후손이자 노론의 영수인 김종수도 홍국영 앞에서는 쩔쩔맸다. 이렇게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된 홍국영은 급기야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된다. 정조의 왕비인 효의왕후가 건강이 좋지 않아 후사를 이을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1778년(정조 2) 6월, 자신의 여동생을 후궁으로 들여보내 원빈(元嬪)으로 책봉 받게 한 것이다. 원빈이 들어선 뒤 당시 사관의 기록을 보면 '홍국영의 권세는 방자함이 날로 극심해 온 조정이 감히 그의 뜻을 거스르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왕의 외척이 돼 권력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홍국영의 계획과는 달리 원빈은 1년도 안돼 사망했고, 홍국영은 왕비의 예법으로 장례를 치르게 했다. 그리고 원빈의 죽음이 효의왕후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트집을 잡아 왕비의 상궁들을 고문하다 죽이기까지 했다. 이 모든 것이 왕실의 정도와 예법에 어긋나는 것이었지만, 신하들은 홍국영이 두려워 어느 누구도 잘못됐다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극에 다른 홍국영의 월권에 분노한 정조는 마침내 그를 조정에서 내쫓았고, 정조의 과감한 결단으로 인해 국정을 농단하던 관료들은 사라지게 됐다. 그리고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인재를 등용한 정조의 혜안 덕분에 화성 축성을 비롯한 개혁이 진행됐고, 이 시기가 오늘날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로 평가받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2기 내각이 시작됐다. 시민들의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당초 80%에 이르는 지지를 받았지만 현재는 지지율이 52%로 상당히 떨어졌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상당 부분은 경제적 문제와 인사문제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문제는 세계 경제와도 연동성이 있는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인사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수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정권출범 초기의 신선함과 과감함은 사라지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의 등판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향후 인사에서는 문 대통령이 개혁군주 정조처럼 국민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인물들을 등용하기 바란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