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13
수원 북수동에서 중화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의사 강서원(36)씨는 "아버지께서 40년 가까이 일궈오신 한의원에서 진실과 진심을 팔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원사람' 외치는 부친 뜻 이어 지역사회 역할·해외 의료봉사까지 팔걷어
도수체조시연 등 강의도 남달라… 피부미용 시술·추나요법 더해 '治本' 추구
진찰실서 틈틈이 운동·미술활동… 환자에 자유로움·건강함 전해지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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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키며 지역 주민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진 화교 출신 한의사가 있다.

 

그의 아들도 옆방에서 환자들을 기다리며 아버지와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수원 북수동에서 중화한의원을 운영하는 부자(父子) 한의사 강학천(64)씨와 강서원(36)씨가 그 주인공이다.

한의원에서 만난 서원씨는 한의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노란색 한의사 가운에 패션 감각을 숨겼지만, 청셔츠에 청타이를 더한 파격적인 조합에 허리 벨트는 자메이카 레게 영웅 밥 말리의 녹·황·적색 줄무늬였다.

서원씨는 "아버지와 함께 채워주고 비워주고, 다시 메워주면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며 "전통 한의학과 젊은 한의학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지역민들의 아픈 곳뿐 아니라 치인치심(治人治心)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 그5

# 한국에서 이방인 한의사로 살아가기

강씨 부자는 모두 대만 국적을 지닌 화교다.

학천씨의 아버지 강여천(87)옹의 고향은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다.

강옹은 10대 시절인 1940년대 부산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경북 대구와 전남 광주를 거쳐 강옹은 수원에 터를 잡았다. 강씨 3대가 수원 시민으로 살아온 세월만 어언 70년이다.

강옹은 현재 강씨 부자의 한의원 자리에서 '동화원'이라는 중식당을 운영하다 미국으로 역이민을 떠났다. 당시 한국과 중국 수교가 이뤄지지 않아 자유로운 왕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떨어져 수원에 남은 학천씨는 원광대 한의대를 졸업한 직후인 1980년 5월 지금의 자리에서 한의원을 개원했다. 30년 뒤 아들 서원씨도 대구한의대를 졸업하고 아버지 옆 진찰실을 꿰찼다.

'피터팬 증후군'(어른아이)이 의심되는 서원씨가 아버지의 한의원에 더해졌지만, 21세기 IT 강국 대한민국에서 중화한의원은 홈페이지 하나 없다.

마음과 몸이 아파 찾아온 환자들에게 시간을 쏟고 진심을 다하면 그만이라는 부자의 신념 때문이다.

서원씨는 "토요일 진료 때는 환자 세 분이 오셨는데, 3시간 동안 같이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다 보냈다"며 "아버지께서 40년 가까이 일궈오신 한의원에서 진실과 진심을 팔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그9

# 아버지의 수원, 아들의 수원


수원은 강씨 부자의 고향이다. 

 

수원에서 나고 자란 데다 한 곳에서 38년째 한의원을 운영하다 보니 애착이 남다르다는 것.

학천씨는 "한의원 개원 초기만 해도 중국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았지만, 수원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까 나는 '수원 사람'"이라며 "수원화교중정소학교장을 맡았던 것도 다 내 고향 수원을 위한 봉사였다"고 말했다.

한의원 자리에서 태어난 서원씨도 '수원 사랑'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지역의 자발적 민간 봉사단체인 소나무회에 가입해 지역민들과의 친밀도를 높이고 지역 사회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일들을 찾아다닌다.

서원씨는 "화교 출신은 학연과 지연이 사실상 없어 어려움이 많아 한국 학교로 가는 친구들도 많지만, 내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초·중·고교 모두 화교 학교를 나왔다"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역민들에게 재능기부 형태로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인터뷰 그7

#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얻은 인생은 '덤'


강씨 부자의 한의원은 수원 구도심 한 편을 올곧게 지켰다. 

 

덕분에 단골 손님들도 많아지고 구안와사(얼굴마비) 치료를 받으러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찾고 있다.

학천씨는 '수원 사람'으로 살아가며 받은 인생의 덤을 지역민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수원시 한의사협회 회장과 경기도한의사협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했으며, 수원경실련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아버지와 함께 한의원을 지키는 서원씨는 자신의 '자유분방함'을 봉사에도 적용했다.

수원 팔달구보건소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한의학 강의를 하며 직접 도수체조를 시연하고, 보건소 신고 하에 침술 치료를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한의사들이 보건소 강의 봉사를 나와 화면을 띄워놓고 일방 강의를 하는 것과 확연히 다르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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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외를 막론한 '덤' 나누기


아버지 한의사가 한의원을 지키는 동안 아들 한의사는 최근 두 차례 해외 의료 봉사를 다녀왔다.

서원씨는 지난달 3일부터 닷새간 캄보디아 시엠립주 '수원마을'에서 현지 주민들을 돌봤다.

의료 봉사는 개발도상국 개발을 돕고자 추진한 ODA(공적개발원조)사업의 일환으로 수원시가 캄보디아에 건립한 수원중·고교 개교 기념일 행사와 맞물려 진행됐다.

당시 행사에는 염태영 수원시장, 조명자 수원시의회 의장 등 300여명이 참석했고, 서원씨는 수원시한의사협회 팔달구 수석반장 자격으로 침구와 뜸, 부항 등 장비를 챙겨 함께 했다.

캄보디아 봉사보다 앞선 지난 7월 중순에는 필리핀 클락에서 경기도청 주관 5개 의약단체(치과·의사·간호사·한의사·약사협회) 소속으로 의료 봉사를 다녀왔다.

서원씨는 "아버지와 제 고향 수원, 한국에서 얻은 모든 것들은 말 그대로 덤"이라며 "지역민들뿐 아니라 동남아 등 해외 오지의 현지 아이들과 어르신들에게 내가 가진 기술을 사용해 도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인터뷰 그2

# 전통 한의학과 젊은 한의학의 콜라보


아버지의 전통 한의학에 '젊은' 한의학을 더해 한의원을 찾는 이들의 질병의 근원을 치료하는 '치본'(治本)이 서원씨의 목표다.

전통 한의학은 침, 뜸, 부항, 약으로 지칭할 수 있는데, 서원씨는 여기에 더해 약침과 매선(녹는 실로 처진 살을 끌어올리는 시술) 등 피부미용 시술과 추나요법을 더해 30대 한의사의 젊음을 더하겠다는 것.

삭발 수준의 심히 단정한 헤어스타일이 독특한 외모로 비쳐 '어르신' 환자들의 외면을 받기도 했지만, 건강한 기운을 전달해드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서원씨의 진찰실에는 보통 한의원에서 찾아볼 수 없는 턱걸이 철봉과 미술 도구도 있다. 환자들이 뜸한 오후 5시 30분부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턱걸이와 팔굽혀펴기를 각 100~150개씩 하거나 그림을 그리다 환자를 맞이하곤 한다.

서원씨는 "운동을 하다가 진찰을 하더라도 자유로움과 건강한 느낌을 몸이 불편한 환자분들께 그대로 전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나이를 먹더라도 지금처럼 언제나 자유롭게 내가 받은 것을 나누며 살고 싶다"고 전했다.

글/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한의사 강서원씨는?

▲ 1982년 수원 출생

▲ 2007년 대구한의대 한의학과 졸업

▲ 2007년 천진중의약대학제일부속의원 침구과 보통 내과 수료

▲ 2011년 경희대 한의학석사 취득

▲ 2014년 경희대 한의학박사 취득

▲ 2014년~ 현재 수원시한의사협회 팔달구 수석반장

▲ 2014년~ 현재 경기도한의사협회 국제이사

▲ 2014년~ 현재 대한한의사협회 중앙대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