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귀하고 농사일은 천하다는
인식 바뀌지 않는 한 농촌미래 없다
한사람 포기 이득보는 치킨게임 아닌
모두가 상생하는 기회 열려 있어야…
젊은이들 점점 많아지길 바란다


이수원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 홍보팀장
이수원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 홍보팀장
최근 들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일부 학교나 기업에서 부모의 직업이나 출신학교 등 개인의 능력과 상관없는 신상정보를 요구하는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본인 또한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차례로 거쳐 오면서 거의 매년 같은 질문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격정의 사춘기를 겪던 10대 시절, 하시던 사업에 실패하고 집에서 '두문불출 및 절치부심'하며 후일을 도모하고 계신 아버지에 대한 반항의 의미로 학교에서 받은 호구(?) 조사 서류를 건네며 직업란에 뭐라고 쓰면 되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짧고 굵은 음성으로 '무직'이라고 적으라는 아버지의 답변에 극도로 분노한 나는 '창피'해서 그렇게는 쓰지 못하겠다고 대들었고, 이에 질세라 아버지는 '그럼 똥이나 푼다'고 하라며 역정을 내셨다. 가족이 모두 잠든 새벽마다 조용히 발코니로 나가 줄담배를 피우시던 가장(家長)의 애타는 사정을 알 리 없었던 탓에 치기 어린 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한국사회가 가진 '직업의 귀천(貴賤)'에 대한 집착은 가히 병적이다. 더 이상 영원한 블루오션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땅한 대안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소위 잘 나가는 직업에 대한 열망이 고질적으로 대물림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개봉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극한 직업'이란 영화가 보여주듯이 한때 경쟁률이 40대 1을 넘어섰던 경찰 공무원도, 한 집 걸러 있는 통닭집 사장도 치킨게임(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이론)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세상에 극하지 않은 직업은 없다'는 감독의 변(辯)처럼 그야말로 극한 직업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농촌이란 시장은 먼저 깃발을 꽂는 사람이 임자인 무주공산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사업 실패 후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무 연고도 없는 경북 봉화군의 산골짜기로 홀연히 떠난 아버지가 이제는 공중파에 소개되는 성공한 귀농인으로 거듭난 것이 단순히 우연만은 아닌 것이다.

물론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일이라도 철저한 준비 없는 도전은 실패로 귀결될 확률이 높다. 때마침 정부에서도 청년농업인 발굴을 통한 영농의식을 고취하고, 한국의 농업과 농촌을 이끌어 갈 후계농업인을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농협 또한 협동조합 운동을 실천하는 정예인력 육성을 위해 금융, 유통, 포장, 가공 등 초기 정착제공과 생산에서 판매까지 종합적인 컨설팅은 물론, 선도 농업인과 연계한 멘토링과 각종 정보공유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 등 젊은 농업인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 및 운영 중이다.

연일 경신하고 있는 최악의 취업난과 실업률을 부조리한 시스템으로 얼룩진 사회구조 탓으로 돌리면서도, 직업에 귀천(貴賤)이 없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요즘이다. 농업은 귀(貴)하지만, 농사일은 천(賤)하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농촌의 미래는 없다. 어느 한 사람이 포기해야 만이 다른 사람이 이득을 보게 되는 각박한 도시의 치킨게임에서 벗어나 모두에게 상생의 기회가 열려 있는 농촌으로 눈을 돌리는 젊은이들이 점점 많아지길 바라본다.

/이수원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