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가들이 태생적으로 얽매이기 싫어하는 데다 시인, 소설가에, 화가, 풍물,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독특한 인물들이 모여 일을 도모하다 보니 그리 쉽지 않은 조직이다.
인천민예총도 초기엔 부침이 심했는데, 변변한 사무실 하나 없이 동가숙서가식 하던 차에 혜성같이 나타난 인물이 있었으니, 노래패 출신의 손동혁이다.
그가 사무처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경직되지 않은 조직력과 탁월한 기획력을 발휘하여 민예총의 노둣돌을 놓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인천문화재단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척박한 인천 문화를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 손동혁이 던지는 문화정책에 대한 혜안이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부단한 공부와 발로 뛰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항상 미덥다."
인천 부평여고 미술교사로 있는 김정렬 작가가 이달 중순 마련한 개인전 '인천인물 열전(列傳)'에서 손동혁(50) 인천문화재단 문화교육팀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경력 사항을 담은 프로필만 A4용지 3장에 달하는데, 김정렬 선생은 손동혁 팀장의 이력을 짧은 글에 잘도 담아냈다.
1987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노동자 노래패에 몸을 담았으며 인천민예총, 주안영상미디어센터 등에서 실무를 총괄한 그는 지금 인천문화재단에서 시민들을 위한 다채로운 문화·예술 교육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손동혁 팀장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민간자문 프로젝트팀 '새문화정책준비단' 19명의 총괄위원 중 한 명으로 참여해 '문화비전 2030'을 수립하기도 했다.
손 팀장은 문화예술 정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문체부장관상을 받았다. 인천문화재단이 기관으로나 개인으로 문체부장관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손 팀장은 "이번 '문화비전 2030'은 정부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을 딛고, 민간 중심 준비단을 구성해 이들이 만든 계획안을 장관이 수용하고 발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기존에는 관이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계획을 짰다고 하면, 이번에는 분과별 민간 위원들이 현장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수렴해 그때그때 반영하며 계획을 짜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정부 '새문화정책준비단' 참여했는데
분과별 민간 위원들과 매주 치열한 논의
10~20년 후 내다 본 문화예술 정책 세워
새문화정책준비단은 지난 1년여간 매주 한 차례 저녁 시간 서울역 근처에서 만나 치열하게 논의했다.
당장 시행할 정책보다는 우리나라 문화 예술 정책의 10~20년 후를 내다본 호흡이 긴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었다.
인천의 입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9개 의제 중 8번째인 '미래와 평화를 위한 문화협력 확대' 안의 '한반도 평화를 여는 문화의 섬, 문화로드 프로젝트'다. 이 중 백령도를 평화의 섬으로 조성하는 것이 첫 번째 추진 과제로 꼽혔다.
방공호나 갱도 같은 백령도의 안보기반시설을 국제예술가의 레지던스 시설로 전환하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백령도에서 국제 축제를 열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한·중·일의 '평화 자본'을 유치해 관광객의 발길을 끌도록 하자는 방안도 제시됐다.
새문화정책준비단 위원들이 전국 각 지역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손 팀장은 백령도를 평화의 섬으로 조성하는 것은 인천,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손동혁 팀장은 "문화 비전을 수립하고 있는 사이에 4·27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됐는데 남북 공동어장, 서해 평화수역 지정과 같은 급진적인 논의들이 오가며 오히려 문화 비전이 한발 늦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정도였다"며 "물 위로 NLL과 맞닿아 있는 백령도에서 문화로 평화를 이야기하는 게 가장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인천문화재단이 벌인 백령도 평화예술 프로젝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에서 국내외 작가들이 머물며 창작 활동을 벌였다.
2014년부터 4년간 중단됐다가 지난해 다시 재개됐다.
그는 "인천은 연평도 포격사건을 계기로 눈앞으로 날아 들어오는 포탄, 실질적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북이 왜 긴장을 늦추고 화해와 협력을 해야 하고 인천이 남북 교류에 앞장서야 하는지를 자각했다"고 덧붙였다.
인천에서는 평화가 결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손동혁 팀장은 1987년 인하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인천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유망한 '공학도'였지만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노래패를 하며 문화 예술 분야에 눈을 떴다. 교실 바깥 현실에 매달리느라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1995년 문화예술생산자연합 기획국장을 맡아 본격적인 문화 활동을 시작한 그는 2000년 소위 대우자동차 사태 때 노동자 조직에 깊숙이 관여했다가 경찰에 긴급체포되는 곤경을 겪기도 했다.
#'문화의 섬…' 의제가 눈에 띈다
백령도, 평화의 섬으로 조성하는게 핵심
레지던스 시설 만들어 국제적 축제 열것

인천의 문화 예술계에 그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2002년 인천민예총 사무처장을 맡으면서다.
손동혁 팀장은 "선배들의 제안을 받아 민예총 사무처장을 맡게 됐는데, 예술가들의 활동 모임이라고 해서 와 봤더니 10평 남짓한 허름한 사무실에 전에 있던 미용실 간판조차 떼지 않고 있어 사람들이 '미용실 하냐'고 물어올 정도였다"며 "그럴듯한 간판을 만들고,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을 만들었고, 그림도 팔고, 인천시에는 단체에 필요한 것만 요구하는 것이 아닌 문화 정책 자문 역할을 하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인천문화재단 설립 필요성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공공기관의 심사·집행·자문 위원으로 활동한 이력만 수십 가지에 달한다.

2007년에는 '시민들이 미디어 읽기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주안영상미디어센터 초대 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도 예술·미디어 분야 공부를 꾸준히 해나가며 더 많은 예술인들이 맘껏 활동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시민들이 예술을 더 가깝게 느끼고 참여할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했다.
인하대에서 문화경영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손동혁 팀장은 "인천은 세계적인 도시와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천은 예로부터 지정학적으로 국제도시였다. 지금도 우리가 중앙이라고 말하는 서울을 등지고 서면 다른 나라가 보인다. 다른 나라와 경쟁해도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인천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며 "특히 인천이 가진 문화적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활용해 동아시아의 다른 도시들과도 협력할 수 있어야 하며 남북교류 문화 사업 역시 접경 지역인 강원도, 경기도와 서로 연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글/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손동혁 팀장은?
▲ 강원도 철원 출생
▲ 1987년 3월 인하대학교 전자공학과 입학
▲ 1995년 11월~1996년 문화예술생산자연합 기획국장
▲ 1997년~2001년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 대표
▲ 2002년 1월~2006년 1월 인천민예총 사무처장
▲ 2007년 4월~2011년 12월 주안영상미디어센터 초대 소장
▲ 2010년 5월~2011년 12월 한국영상미디어센터협의회 초대 대표
▲ 2012년 2월~현재 인천문화재단 근무
▲ 2010년~현재 인천알리앙스 프랑세즈-인천프랑스문화원 운영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