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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만 남은 아버지-사할린에서 영구 귀국한 러시아 동포들이 모여 사는 양주시 옥정동에서 이용바우(74) 씨가 러시아로 강제 징용돼 유해조차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러시아로 간 아버지 끝내 못돌아와
칠십 평생 그 흔적 찾아 헤매던 딸
러 근무지 기록 확인한 것이 '한계'
정부 도움 간절 '외교창구' 못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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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로 강제 징용돼 숨진 아버지…유골이라도 찾고 싶습니다."

1943년생인 신윤순(76·여)씨는 아버지 신경철씨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1943년 러시아로 강제 징용간 아버지가 끝내 모국으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칠십 평생 아버지를 찾아 헤맨 신씨는 지난 2013년에야 겨우 아버지의 흔적을 찾았다.

신씨는 "인천 동구에 1950년에 아버지와 같이 벌목장에서 일하신 분이 영구 귀국해 살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분으로부터 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곧장 러시아로 갔다"고 말했다.

이후 수소문 끝에 러시아 포르나이스크(Pornaysk) 근로연금 공단에서 아버지 신씨가 1949년에서 1953년 사이 근무한 기록을 찾아낼 수 있었다.

신씨는 "49년부터 51년까지 근무했고 6개월 휴가를 갔다는 기록을 찾는데 현지에서 꼬박 20일이 걸렸다. 아버지의 마지막 기록은 53년 3월 30일 휴가를 갔다는 것이다. 내가 찾을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고 했다.

신씨는 간절히 정부의 도움을 원했지만, 이런 민원을 받아줄 창구를 찾지 못했다. 결국 신씨는 지난해 4월부터 매주 하루씩 청와대 앞에서 "아버지의 유골을 찾아달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씨와 같은 사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난 2015년 문을 닫은 정부 산하 '대일 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대일항쟁기 위원회)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외교 협상을 할 창구가 있어야 국외에서 숨진 강제동원 피해자의 신원을 조회하고, 기록을 확인하는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일항쟁기 위원회 부활을 원하는 건, 비단 신씨 뿐만이 아니다. 양주에 집단으로 거주 중인 러시아 영구 귀국 동포들도 대일항쟁기 위원회를 통한 피해 조사와 지원을 원하고 있다.

러시아에 거주하다 지난 2014년 영구 귀국한 김정희(73·여·양주시 옥정동)씨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은 이제 70대 고령이 됐다. 더 늦기 전에 대일항쟁기 위원회를 통해 명확한 조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