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악'에 창문 닫자 "덥다"는 아이
마스크 안쓰면 신나서 '폴짝폴짝'
놀이터 보고 심드렁하는게 더 슬퍼
먼지 없는날은 운좋다는게 가엽고
봄바람 향기 모르고 자라 안쓰럽다

"여름이 왔어, 엄마?"
잠이 덜 깬 아이가 물어서 나는 엉덩이를 내처 두들겼다.
"봄 다시 오니까 걱정 말고 자."
보일러 온도를 낮춘다고 해서 방이 금방 식을 리 없었다. 결국 창문을 열었다. 낮 동안 미세먼지가 없었기에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창문으로 찬바람이 들어오자 아이가 그제야 헤벌쭉 웃는다. 나도 좀 살 것 같았다. 간밤에 비가 온 것인지 창문턱이 젖어 있었다.
어차피 잠은 깼다. 하루에도 백 가지씩 질문을 던지는 호기심쟁이 다섯 살은 왜 방이 이렇게 뜨거워졌는지, 엄마는 왜 보일러 온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는지, 왜 더우면 땀이 나는 건지, 아침이 되면 말린 체리를 넣은 시리얼을 얼마만큼 줄 것인지 쉬지도 않고 재재거렸다. 워킹맘들 사정이 다 같겠지만, 종알거리는 아이의 입술이 아무리 귀여워도 새벽잠을 이렇게 설치고 나면 아침이 되어 아이는 일어나지 않으려고 보챌 것이고, 왁왁 우는 아이의 팔을 잡아당겨 억지로 어린이집에 끌고 가야 할 것이고, 지각을 할세라 정신없이 지하철역으로 뛰어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하루 종일 병든 닭처럼 자울자울 졸게 될 것이었다. 아아, 끔찍한 일상들이여.
실컷 떠든 아이가 다시 잠이 들려 할 때 문득 생각이 났다. 낮에 미세먼지가 없었다고 밤에도 괜찮은 것이 맞을까. 비가 왔으니 먼지도 사라지지 않았을까. 괜찮을까. 정말 괜찮을까. 침실은 여태 뜨겁고 식을 기미는 아직 보이지도 않는데. 더 참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들어 미세먼지 지수를 확인했다. 미세먼지 최악. 벌떡 몸을 일으켜 창가로 뛰어갔다. 사십 분도 넘게 최악의 미세먼지를 아이와 둘이서 들이마시고 있었다니. 창문 닫는 소리에 아이가 깼다.
"싫어! 덥단 말야! 창문 닫지 마!"
"미세먼지가 많대. 창문 열면 안된대."
"미세먼지가 들어오면 쟤가 쏙쏙 빨아먹잖아!"
아이가 가리키는 '쟤'란 공기청정기다. 그래도 안된다. 그렇게까지 믿을 만한 녀석은 아니다. 짜증을 내는 아이를 도닥이며 더운 침대에 누웠다. 발음이 서툰 다섯 살도 '미세먼지'는 또렷하게 발음할 줄 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의 스마트폰을 들어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재미도 붙였다. 마스크를 하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일도 없다. 가끔 미세먼지 없는 날이라고 마스크를 벗겨주면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뛸 뿐이다. 미세먼지는 아이들에게 이제 일상이다. 끔찍한지도 모르는 일상.
지금 이 집으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아이는 창밖 풍경을 내다보며 와아, 신이 났다. 아파트 2층 발코니 창으로는 놀이터가 한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이 집을 고른 이유도 나에게는 그것이었다. 창문을 열고 "밥 다 됐어! 얼른 들어와!" 소리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아직 아이 혼자 놀이터에 내보내려면 몇 년은 더 있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고작 15개월이었던 아이는 놀이터에 환호했지만 다섯 살이 된 지금, 이제는 심드렁하다. 그네가 있고 미끄럼틀이 있으면 뭘 해, 미세먼지 때문에 나갈 수가 없는걸. 미세먼지고 뭐고 무조건 나가자고 조르지 않아서 나는 더 슬프다. 원래 이곳의 하늘은 그런 거야. 아주 독한 먼지들이 떠다니고, 어쩌다 그렇지 않은 날이면 그날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는 아이가 가엾다. 베이비로션의 향기, 새 샴푸의 향기는 맡을 줄 알지만 봄바람의 향기, 여름비의 향기, 마른 흙의 향기를 모르고 자라는 아이가 안쓰럽다. 그런 생각이 드는 새벽이다. 아아, 어쩌다 보일러 온도를 잘못 맞춰가지고 이 야단이람. 내일 회사에선 얼마나 또 졸려고.
/김서령 소설가